‘보이스피싱 피해자’에서 ‘청탁 피의자’로…윤장현 미스터리

입력 2018-12-05 04:00 수정 2018-12-05 17:12

‘취업청탁과 함께 돈을 받아도 문제일 텐데 돈을 주고 가짜 혼외자녀 취업까지 챙겨줬다니….’

민선 6기를 이끌었던 윤장현 전 광주시장을 둘러싼 비위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모(49·여)씨에게 4억5000만원을 뜯긴 이후 자녀채용에도 결정적 도움을 준 정황이 포착됐다. 윤 전 시장은 순식간에 범죄 피해자에서 채용비리 용의자로 둔갑했다.

재선 출마를 저울질하던 윤 전 시장이 돈을 떼이자 지역 일각에선 “평생 어려운 사람을 돌봐온 성격 탓”이라고 동정론을 폈다. 줄을 대기 위한 정치적 꼼수가 아니라 선행이 몸에 밴 습성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윤 전 시장이 김씨 자녀채용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김씨를 실제 권양숙 여사로 믿은 윤 전 시장은 “노 전 대통령 혼외자녀들을 도와 달라”는 말에 현혹돼 재임 중 취업청탁을 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김씨 아들 조모(26)씨는 광주시 산하기관에 임시직으로 취업했다. 윤 전 시장은 정규직 채용까지 시도했다가 해당 기관의 반대에 부딪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7개월간 일하다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난 10월 그만둔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의 딸(28)은 광주 한 사립중학교 기간제 교사로 채용돼 근무 중이다. 현직 시장이 취업 알선을 한 결과다.

검찰은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따라 윤 전 시장을 사기사건 피해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5일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경선과 관련해 김씨에게 돈을 건넸을 개연성을 검찰은 열어두고 있다. 경선 직전까지 윤 시장이 언급했다는 ‘신의 한수’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리는 일도 검찰의 과제다. 지역 관가에서는 “안과의사 출신인 윤 시장이 신설될 예정이었던 외교부의 명예직 보건대사로 유력하다는 설이 한때 떠돌기도 했다”며 “재선 공천 아니면 대사직을 부탁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2월 3일 출판기념회, 3월 29일 재선 출마선언, 엿새 만인 4월 4일 불출마 선언. 사기범 김씨에게 속아 돈을 송금한 시기에 윤 전 시장은 정치적 격랑을 탔다. 그가 평소 애정을 갖고 관리해온 SNS는 당시 그의 심경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섰던 3월 15일에 그는 ‘광주시장으로서 가장 우선 명심할 일은 부정한 일을 행하지 않는 정직함이다. 광주시장이 감옥에 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썼다.

윤 전 시장은 그즈음 출마선언 포스터에는 ‘광주다움으로 무장한 리더, 당당한 역사만큼 우리 후손들의 삶도 당당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재선에 도전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제 광주다움이 무엇인지, 당당한 역사가 무엇인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 앞에서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한다.

광주=장선욱 사회2부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