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에 없는 4가지, 온수·부엌·안전·사생활, “홈리스로 분류하자”

입력 2018-12-05 04:00

김모(33)씨는 고시원에 살면서 공황장애를 겪었다. 마트에서 일할 때 손님이 주위로 몰려들면 손이 떨리고 불안했다. 박모(51)씨도 고시원에 살면서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4~5일씩 집밖에 나가지 않는 일이 잦아져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러한 ‘이상 증상’의 원인으로 집(고시원)을 꼽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4일 고시원, 비닐하우스, 쪽방촌, 판잣집, 숙박업소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203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22명을 심층면접했다.

조사대상 203가구 가운데 숙박업소의 객실(쪽방)에 거주하는 경우(35.5%)가 가장 많았다. 이어 고시원·고시텔이 33.0%, 판잣집·비닐하우스 18.2%, 컨테이너·조립식 공간 등 13.3% 순이었다. 비주택 가구의 84.2%는 1인 가구였다. 평균 주거면적은 17.6㎡(5.3평)이었다. 75.4%는 1인 가구 최소주거면적인 14㎡에 미치지 못했다.

심층면접에 응한 사람들은 고시원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곳이라고 토로했다. 박모(26)씨는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옆방 중국인의 중국어 발음이 뚜렷하게 다 들린다”며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곳은 화재와 자연재해에도 더 취약하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홍모(68·여)씨는 “태풍이 오면 지붕이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로 집이 위험하다”며 “마을에서 1년에 한두 번은 꼭 불이 나 집에 들어가면서 연기가 나지는 않는지 하늘부터 보는 게 습관이 됐다”고 전했다.

203가구 중 19.7%는 비주택에 거주하면서 범죄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모(27·여)씨는 “안전을 위해 여성전용 고시원에 가고 싶어도 시설이 비슷한 남녀 혼용 고시원보다 월세가 10만원 가까이 비쌌다”며 “전에 살던 고시원에선 스토킹을 당했다”고 말했다.

거주공간에 독립된 부엌이 없는 비율은 33.0%였고 냉수만 나오는 목욕시설도 20.7%로 조사됐다. 난방시설이 없는 가구는 24.1%였다. 난방시설이 있지만 고장이 나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배모(78·여)씨는 “연탄보일러가 재작년에 고장 났는데, 돈도 모자라고 몸도 안 좋으니까 아직까지도 수리를 못하고 있다”며 “생활비 이외에 쓸 수 있는 돈도 없어 온풍기도 장만하지 못했다”고 했다.

비주택 거주자들이 제대로 된 주택을 찾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이유는 보증금 부담 탓이다. 이모(23)씨는 “대학교 근처 원룸은 보증금으로 최소 1000만원을 요구한다”며 “지금 살고 있는 고시원은 보증금이 100만원 정도로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사대상의 88.2%는 월세로 살고 있고 평균 월세는 21만7000원이다. 조사를 진행한 한국도시연구소는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열악한 형태의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도 ‘홈리스’로 분류해 적절한 주거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