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5) 대학 4학년 때 성령체험 ‘날라리 신자’ 벗어나

입력 2018-12-05 00:00 수정 2018-12-05 09:20
박종호 장로가 1990년대 초반 한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단과 함께 찬양을 하고 있다.

‘날라리 신자’로 살던 내가 회심하게 된 건 1984년 대학 4학년 때의 ‘성령체험’ 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유학비용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추가로 알아보다가 경기도의 한 개척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가게 됐다. 다른 교회보다 보수가 높아 무작정 결정한 일이었다.

개척예배 당일 그 교회에 갔더니 전도사가 담임으로 있었다. 그분에게 병 고치는 은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하루는 교회에서 시각장애인이 눈을 떴다고 했다.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웃긴다, 진짜. 내가 그걸 믿을 것 같나. 자기들끼리 짜고 하는 걸 모를 줄 알고.’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가 자기 집으로 저녁 초대를 했다. 그러더니 대뜸 “박 선생님은 성령세례를 받았습니까”라고 물었다. 물론 받지도 않았지만 그게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잘못 말했다가 성가대 지휘자 자리가 사라질까봐 성령세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전도사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떠나갈 지어다”를 외치더니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구호를 외치게 했다.

그렇게 한동안 따라하다 보니 전도사가 ‘방언을 받았다’고 말해줬다.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는데 받았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서울의 집까지 서둘러 들어갔는데 도착하니 어머니가 방에 쓰러져 계셨다. 위가 아프다고 하는데 위경련 같았다. ‘자정이 다된 시각에 병원 문이 열렸을까’를 고민하다가 문득 교회에서 본 게 떠올랐다. 어머니께 내 눈을 보라고 한 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엄마의 배를 아프게 하는 더러운 것들아 떠나가라”고 외쳤다.

“아직도 아프시냐”고 묻자 어머니는 “이젠 안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대답을 믿을 수 없었다. 계속 어머니께 질문했고 어머니는 아프지 않다는 말씀을 반복했다. 그저 흉내만 냈을 뿐인데 병이 고쳐지다니, 예수가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성경도 진짜인가.’ 대학 동기나 선배가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며 전도하면 허무맹랑하다며 무시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일 이후 성경을 읽자 신기하게도 그 내용이 믿어졌다. 천지 창조와 예수의 구속, 부활을 보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100년도 살지 못할 인생에 미련한 투자를 하느니 이 세상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 가치 있는 일은 전도자가 돼 예수를 전하는 것이었다.



영원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로 한 후 이탈리아 유학을 포기했다. 대신 교회 새벽예배에 다니며 선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주변에선 ‘종호가 미쳤다’는 소문이 났다. 아랑곳 않고 전도를 하니 성가대에서 같이 봉사했던 후배들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전도자로서 선교만 하고 싶었던 나는 서울대 근처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고려신학원에 진학했다. 성령체험으로 예수를 믿게 됐지만 체계적으로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였다. 영원한 삶을 위해 투자하고 주님만을 위해 노래하겠다는 ‘영리한’ 선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