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사법농단’ 개인 일탈 아닌 대법원의 조직적 범죄 판단

입력 2018-12-03 18:56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각각 지난달 19일과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검찰은 3일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뉴시스

검찰이 3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이 앞서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대법원 차원의 조직적 범죄라는 점을 재차 못 박았다.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 여부는 의혹의 최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신병처리와 긴밀히 연관된다. 이번 주가 수사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재판개입·법관사찰 등 혐의(직권남용 등)로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행정처장으로 재직했던 시기 양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해 청와대 요구대로 재판을 진행하거나 행정처 입장에 반기를 든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전 처장의 구속영장은 158쪽, 고 전 처장은 108쪽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00쪽을 넘는 구속영장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라며 “혐의 자체가 상당히 방대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이들이 당시 사법행정 라인 최상위층으로서 결정적인 권한을 행사했다고 판단해서다. 검찰 관계자는 “(두 전직 처장은) 이미 구속된 임 전 차장의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했다”며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게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혐의내용을 모두 부인하고 있고 하급자들의 진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특히 두 전직 처장의 혐의를 ‘업무상 상하관계에서 지시에 의해 일어난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사법농단 의혹이 개인적 일탈 행위가 아니라 양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법행정 라인의 조직적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양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두 사람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한 혐의 등이 새로 추가됐다. 지난달 14일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는 없던 내용이다. 검찰은 지난달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 압수수색에서 2014~2017년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등 문건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법관 블랙리스트 실체를 확인했다. 특히 이 문건들에 두 전직 처장을 포함, 양 전 대법원장의 서명이 명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두 전직 처장은 그러나 검찰 조사과정에서 관련 혐의에 대해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서명만 했을 뿐”이라며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역시 검찰이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됐다.

검찰은 영장을 청구하면서 일제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이 직접 전범기업 측과 비밀 접촉을 한 정황과 관련한 혐의도 추가했다. 검찰은 박 전 처장이 강제징용 재판 개입이 본격화된 2014년부터 행정처장으로 재직한 만큼 관련 의혹에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두 전직 처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번 주 결정된다. 이들의 구속 여부는 향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신병처리에 대한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이 예상되는 가운데 두 전 처장이 구속될 경우 최종 지시자였던 그의 혐의가 일정 부분 소명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영장이 불발될 경우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이르는 수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법원의 ‘셀프 기각’을 놓고 또 한번 논란이 커지면서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해를 넘길 수도 있다.

구자창 문동성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