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스릴러 ‘SKY 캐슬’ 시청자 사로잡다

입력 2018-12-04 04:00
한국 사교육 현실과 그 이면에 깔린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는 JTBC 풍자극 ‘SKY 캐슬’의 한 장면. 철두철미하게 아이들을 관리하는 한서진 역을 맡은 배우 염정아(왼쪽)와 낭만적 교육관을 지닌 노승혜 역의 윤세아. HB엔터테인먼트, 드라마하우스 제공

“철저히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타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단지 내 학부모·학생들이 참여하는 독서토론회 ‘옴파로스’의 회장,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는 것만으로 엉덩이를 토닥여줄 법한데, 의문을 품는 아이들에게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대학 입시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품위있는 그녀’(2017) ‘미스티’(2018)에 이어 JTBC ‘풍자극’의 맥을 잇는 금토드라마 ‘SKY 캐슬’의 한 장면이다. 상위 0.1%가 모여 사는 석조저택 단지 SKY 캐슬을 배경으로, 자녀들을 일류로 키워내기 위한 엄마들의 치열한 전쟁을 담았다. 사교육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을 1.7%(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시작했는데, 4회 만에 7.5%로 4배 이상 껑충 뛰었다.

극 중 엄마들은 헌신을 넘어 ‘투신’한다. 학원이 끝난 자녀들을 픽업하는 것은 기본이요, 다른 아이의 학종(학생부종합전형) 포트폴리오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최고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선택을 받기 위해 거짓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스릴러극 못지않게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몰입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입시가 스릴러에 어울리는 소재가 된 슬픈 현실이 그 이유 중 하나다. ‘SKY 캐슬’은 소수 상류층의 이야기로 위장했지만, 한 편의 우화처럼 사교육 현실과 그 이면에 깔린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종로학원 강남 본원 이민섭(52) 원장은 “실제로 정시 준비는 물론이고, 강남뿐 아니라 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입시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고1 때부터 자기소개서 관리를 받고 있다”고 했다.

교육에 대한 투자만이 계층 상승의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된 사회에서 부모들은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욕망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욕망을 욕망하기 마련이다. 극은 욕망이 불러오는 씁쓸한 결과를 추적해나간다. 아들을 서울의대에 합격시킨 ‘워너비 맘’ 이명주(김정난)는 돌연 죽음을 택한다. 착한 아들이 실은 엄격한 교육으로 일관한 자신들 부부를 증오하고 있던 걸 알게 된 후다. 캐슬에 사는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결핍을 지녔다. 자극적인 설정이긴 하나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하기에는 꽤 현실적이다.

네 쌍의 부부와 자녀들의 서사도 세밀하게 구성돼 흡입력을 키운다. 명문가를 만드는 건 정성이라고 믿는 ‘퍼펙트형 엄마’ 한서진(염정아), 인성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수임(이태란) 등 다채로운 인물들에 자신을 대입하며 볼 수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교육 문제를 다루는 데다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과 맞물려 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며 “누구나 주인공들과 유사한 욕망이 있다는 점에서 뜨끔함을 느끼게 한다. 극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