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방비로 서 있다가 넘어지거나 아예 사라지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친히 세우신 교회가, 피로 값 주신 성도가 어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일까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는 기독교인이 전체의 1.5%에 불과했지만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000만명의 기독교인이 있지만 시대에 뒤처지고 지탄받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기도도 쇠약해지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도 희미해져 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보다 세상을 향한 갈망이 더욱 높아지고 서로 화합하기 보다는 불화가 지속됩니다. 어두운 세상 권세 앞에서 우리가 오히려 당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부족해서일까요.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 바로 기도가 부족해서입니다. 기도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물론 말씀도 있고 비전도 있으며 열정과 사명, 훈련과 헌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결단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선 기도의 힘이 뒤를 받쳐줘야 합니다. 과연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한마디로 힘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고 자신감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변하지 않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성경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자주 놓아 버립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승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기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자를 가장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요 영혼의 호흡입니다. 사는 길이기도 하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일찍부터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는 긴 시간보다 집중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과 인생을 볼 수 있고 많은 인생들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매일 주님만 가득하기를 소망하고 열정을 가지고 철저히 주님만 바라보고 그분을 통해 희열을 느끼고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인생이 아닌 주님으로 만족하는 인생이면 충분하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님만 소망하며 기도하는 인생이 되면 됩니다. 두려워 말고 주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변화되면 용서하시고 오히려 덕이 되는 결과로 바꿔주실 선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서 희망을 버린 지 오래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염려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예레미야 33장 3절은 증거합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나의 욕망을 이루려 말씀을 인용하지 말고 조용히 주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주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에는 눈을 닫고 하나님을 향해 귀를 여는 자가 돼야 합니다. 그 길로 이끄는 힘이 기도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바른 방향으로 사는 교회와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임우성 압구정예수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입력 2018-12-03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