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째라” “꼼수” “불안감 조장” “폐원” 가중되는 학부모 불안

입력 2018-11-30 04:01

내년 아이의 유치원 입학을 앞둔 김모(29)씨는 요즘 유치원에 전화 돌리는 게 일이다. 그가 사는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사립유치원 64곳 중 13곳만 온라인 입학지원 시스템 ‘처음학교로’에 등록했다. 나머지 유치원들은 자체 설명회를 열고 모집을 받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소식이 없는 곳이 많다. 전화해서 모집 일정을 물어봐도 “기다려 보시라”는 답만 돌아올 때가 부지기수다. 이 지역은 국공립유치원 경쟁률이 ‘로또 수준’이어서 더욱더 걱정이 크다.

김씨는 29일 “사립유치원들이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고 아이를 볼모로 잡아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며 “주변 맞벌이 부모들 사이에서는 막막하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들이 정부와 ‘힘겨루기’에 매진하면서 피해가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본격적 모집 시즌인데도 일정을 미루기만 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는 유치원들도 많다. 당장 내년부터 아이를 보낼 유치원을 찾아야 하는 예비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이 아이를 볼모로 잡고 세력을 과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학부모들은 “대놓고 담합하는 사립유치원이 많다”고 토로한다. 같은 지역 사립유치원들끼리 논의해서 원아 모집 공지를 무기한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이모(29)씨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비리 명단에 들자 옮길 곳을 알아보다 포기했다. 수십 군데에 전화를 돌려 입학설명회 일정을 물어봤지만 어느 곳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대다수 유치원이 “다른 유치원장들과 상의한 후 말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 곳은 대놓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라고 하더라”며 “엄마들의 불안감을 최고조로 올려놓겠다는 건데 정작 학부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무력감마저 느꼈다”고 털어놨다.

폐원을 추진하는 사립유치원도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전국 사립유치원 85곳이 폐원 절차를 밟고 있다. 폐원 뒤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사례들도 등장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유치원은 최근 학부모 간담회를 열고 놀이학교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강남구의 다른 유치원도 영어유치원으로 전환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는 사이 학부모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일부 유치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7세반만 놀이학교로 바뀐다더라” “내년 봄까지만 하고 폐원한다고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학부모 정모(35)씨는 “나중에 잘못되면 아이들이 충격 받을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