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부마항쟁 당시 계엄 포고 위법” 첫 판단

입력 2018-11-29 18:17 수정 2018-11-29 21:33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시청 앞 계엄군의 모습.

부산·마산민주항쟁이 벌어지던 1979년 10월 18일 부산 지역에 내려진 계엄포고는 헌법과 법률에 위반돼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계엄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이 확정된 김모(64)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부산에선 1979년 10월 18일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당시 박찬긍 계엄사령관은 “계엄법에 따라 유언비어 날조·유포를 엄금한다”는 계엄포고를 내렸다.

김씨는 비상계엄 선포 이틀 뒤인 20일 부산 지역 소요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러 온 손학규 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 간사(현 바른미래당 대표) 등에게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씨가 ‘데모 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 속에서 났다’는 말을 전했다며 기소했다.

1981년 대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이후 35년이 지난 2016년 7월 부산고법은 김씨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부산고법은 같은 해 9월 “1979년 10월 18일 발령된 계엄포고는 위헌·위법해 무효”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계엄포고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당시 사회상황이 구 계엄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라고 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계엄포고의 내용 자체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계엄포고의 내용은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했다”고 봤다.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토록 한 것도 광범위하고 추상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박정희 정권이 불법으로 행사한 ‘계엄’이라는 제도적 폭력에 대하여 사법 역사상 최초로 그 위헌·위법성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