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아이들, 하나님 선물이니 소중히 지켜야”

입력 2018-11-30 00:01
아동보호치료시설 출신인 한 소녀(오른쪽)가 28일 수원 영통구의 아파트에서 청소년자립후원회 식구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 먹고 있다. 왼쪽부터 이일형 기독교세진회 총무, 이미영 후원회장, 한순례 전도사.

28일 경기도 수원 영통구의 한 아파트. 잠옷 차림의 A양(15)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한순례(63·여) 전도사가 웃으며 배를 먹으라고 건넸다. 한 전도사는 A양의 친부모는 아니지만 함께 생활하며 가족처럼 지낸다. A양은 아동보호 치료시설에서 6개월을 지낸 ‘6호 소녀’로 퇴소 후 ‘드림하우스’라 불리는 이곳을 찾았다.

법원은 비행 청소년을 1∼10호로 나눈 후 1∼5호는 가정에서 보호관찰토록 하고 7∼10호는 소년원으로 보낸다. 소년원에 갈 만큼 중범죄는 아니지만 시설의 보호가 필요한 6호 아이들은 아동보호 치료시설로 간다. 가정불화 등으로 지낼 곳이 마땅찮은 일부 아이들은 의무 기간인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시설에서 6개월을 더 머무른다.

“친딸보다 더 사랑스러워요. 그러니 같이 살죠.” 한 전도사가 조용히 과일을 먹고 있는 A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첫 만남은 어색했다고 한다. 상처가 많은 A양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시설에서 나온 터라 옷과 화장품이 새로 필요했다. 함께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중학생인 A양이나 60대 여성인 한씨 모두 젊은이에게 유행하는 화장품을 사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다니며 화장품을 고르다 말문이 트였다. 한씨는 A양과 팔짱을 꼈고 A양은 떡볶이를 사달라고 졸랐다.

청소년자립후원회(이미영 회장)는 9년째 시설과 소년원을 나온 아이들을 보살펴오고 있다. 후원회가 키운 아이들은 30여명. 후원회는 기독교세진회(정지건 이사장)로부터 A양의 사연을 듣고 흔쾌히 자신들이 돌보겠다고 답했다. 한 전도사는 친손자를 돌봐달라는 부탁은 거절해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에는 8년째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 11년을 살고 2010년 한국으로 온 이미영 회장은 소년원 예배를 찾아갔다가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을 느꼈다. 이 회장이 하나둘 아이를 돌보기 시작하자 지인들과 법무부 공무원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후원자들끼리 모여 소년원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을 위한 기도 모임도 정기적으로 연다.

후원회에서 키운 한 소년은 후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3년 넘게 봉사를 했다. 그곳에서 보육원 유치원 병원 등을 다니며 빵을 구워 나눴다. 소년은 크리스천으로서 사랑과 봉사로 사는 법을 배우며 건강한 성인이 됐다. 이 회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선물인 아이들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우리는 그저 아이들 곁을 지키며 그들이 필요할 때 응원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세진회는 갈 곳 없는 소년원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을 내년 2월 완공할 예정이다. 세진회 이일혁 이사가 5층 건물을 내놓았고 후원회는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섰다. 이일형 세진회 총무는 “천주교는 살레시오회를 통해 소년원 아이들을 조직적으로 돌보고 있다”며 “소년원 아이를 돌보는 더 많은 손길이 한국교회에도 생겨나며 좋겠다”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