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이란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누구일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개신교 내 개혁주의 전통의 학자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맨 처음 ‘세계관(Weltanschauung)’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1790년 출간한 ‘판단력 비판’이었다.
칸트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 직관이라는 의미에서 세계관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더 이상 이 단어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키진 않았지만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 등을 거치면서 세계관은 ‘세상에 대한 지성적 지각’이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독일에선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인기를 끌며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신학자이자 변증가였던 제임스 오어는 동시대의 지성과 소통하기 위해 효과적인 변증의 전략으로 세계관을 택했다. 철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커지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제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1891년 에든버러 연합장로교신학대학의 ‘커 강연’에서 초청강의를 하고 2년 뒤 이를 토대로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책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오어 이후 철학자 고든 클락과 신학자 칼 헨리를 통해 세계관이란 개념은 북미 복음주의 주류 사회로 편입됐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정치인인 아브라함 카이퍼를 통해 기독교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운동이 힘을 얻었다. 헤르만 도여베르트, 스위스의 프랜시스 쉐퍼로 이어지면서 복음주의권에서 유독 세계관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저자 데이비드 노글은 “기독교 세계관이 인기를 끈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실재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개신교뿐 아니라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안에서도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사용돼왔음을 포착해 제시한다. 이어 쇠렌 키에르케고르, 마르틴 하이데거,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등 200여년간 서양의 근현대 철학자들이 세계관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상세히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토마스 쿤이 주장한 과학철학 등을 살피면서 이를 통해 우리가 흔히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하는 과학 분야 역시 세계관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보여주는 장이다. 충분히 흥미롭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에서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두루 살핀다. 기독교 세계관이 품고 있는 상대주의적인 함의에 대한 현대 신학자들의 우려도 빼먹지 않고 소개한다.
지난 200여년을 관통하며 세계관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신학적, 철학적, 자연과학적, 사회과학적으로 추적하는 지적 여정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계관은 근대 사상과 기독교 사상에서 특별한 역할을 해 왔던 중요한 지적 관념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세계관이 주는 철학적, 신학적, 영적 유익을 짧게 제시한 뒤 그는 “세계관은 인간 마음의 불가피한 기능이며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정체성에서 핵심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들려준다.
미국 댈러스침례대학교의 철학교수이자 기독교 세계관의 탁월한 전문가인 저자가 2002년 내놓은 뒤 이 책은 세계관 분야에서 중요한 저서로 손꼽혀왔다. 하지만 근현대 철학의 다양한 논의를 넘나드는 내용이 쉽지 않다보니 번역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도서출판 CUP에서 판권을 계약한 후 4년여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준비한 끝에 박세혁 번역가의 손을 거쳐 유려한 문체로 선보였다. CUP의 김혜정 대표는 29일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침체되고, 1세대 운동가 중 일부는 극우보수 성향까지 보이면서 갈수록 한국의 기독교는 폐쇄적이고 세상과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이 책이 세계관 자체가 가치관, 사고의 틀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이제야말로 합리적으로 세상과 성경을 같이 연구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시도가 일어나게 함으로써 침체된 기독교에 숨구멍과 같은 책이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곁들여 읽을 만한 책] 다음세대 위해 쉽게 풀어쓴 ‘기독교 세계관’
세계관 수업/양희송 지음/복있는사람
한국교회 안팎에서 다음세대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이보다 잘 설명할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적잖은 시간 기독교 세계관을 연구하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교회 밖 여러 현장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접목을 고민하며 다음세대와 꾸준히 소통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계관 수업’(복있는사람)을 쓴 양희송 청어람 ARMC 대표 이야기다.
그는 1980년대 후반 대학에서 처음 기독교 세계관을 접했다. 1999년 신학공부를 하러 떠난 영국에서 다시 관심을 가졌다. 귀국한 뒤 2002년 월간지 ‘복음과 상황’을 중심으로 일었던 기독교 세계관 논쟁에 뛰어들었고 2004년부터 7년간 포항 한동대에서 기독교 교양필수 과목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강의했다. 그동안 강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국내외 기독교 세계관을 둘러싼 최근 논의까지 이 책에 담아냈다.
시작은 세계관 자체에 대한 개념 설명이다. 이어 구약의 창세기 1장, 신약의 역사적 예수를 기독교 세계관에 비춰 읽어낸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맞게 기독교 세계관을 내러티브로 품고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확장된 내용을 누구나 알기 쉬우면서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와 스토리, 그림 등을 활용해 흥미롭게 풀어낸다.
왜 지금 다시 새로운 기독교 세계관 수업이 필요한 것일까.
이 질문에 그는 패배주의와 승리주의 두 가지를 극복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기독교 신앙이 세상과 자기를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패배주의를 떨쳐내고, 동시에 과도한 자신감이 불러온 오만한 태도와 과잉실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양 대표는 “이 두 가지를 극복할 때 자기 신앙에 대해 적절한 자신감을 갖고 있고, 자신을 사랑하며, 이웃 곧 타자를 환대할 줄 아는 사람이 탄생할 것”이라며 “세계관을 공부한 이들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주기 바란다”고 적고 있다.
그는 “그동안 만났던 20대 청년 중 기독교 세계관 용어를 안다고 답하는 비율이 5%도 채 안됐다”며 “지난 20여년간 관련 논의가 소강상태였던 만큼 이 책이 새로운 세대가 기독교 세계관을 재미있는 동시에 의미 있게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 [다시 불러낸 책] 오늘날 서양문화 만들어낸 사람들, 그들의 사상 기독교적 관점서 분석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프랜시스 쉐퍼 지음/김기찬 옮김/생명의말씀사
라브리공동체 설립자이자 세계적 변증가, 행동하는 문화전도자였던 프랜시스 쉐퍼(1912∼1984)의 역작이다. 서양 역사를 관통하면서 20세기의 사상을 낳은 흐름과 발전과정을 살피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4년 처음으로 번역돼 출간된 이 책은 한국교회 기독교세계관 논의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기독교세계관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이후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1985), 해리 블레마이어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1986) 등이 출간되면서 기독교세계관 논의가 본격화됐다.
책은 오늘날 (서양) 문화를 만들어낸 역사의 중요한 시기와 그 시기가 있도록 한 사람들의 사상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저자는 서양 사회와 문화의 중심을 기독교로 생각한다. 로마 사회를 첫 장에서 다룬 것도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로마 사회의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과 비교하면서 그 취약한 기반 때문에 로마가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중세는 성경적 진리를 따르는 대신 그리스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은총을 대립시킴으로써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종교개혁은 성경적 진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였으나 역사의 흐름은 인본주의의 등장으로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인본주의는 오직 인간만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인류가 맹신한 과학과 이성의 결과는 결국 인간사회의 해체를 촉발했고 절대군주 엘리트들은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교묘히 달래면서 비인간화하기에 이르렀다. 쉐퍼는 이를 서양문화가 처한 현주소로 지적하고 이 난국에서 벗어나는 대안으로 기독교 진리로 돌아가자고 역설했다. 성경의 하나님 계시를 인정하는 게 진정한 자유의 토대라는 의미다. 과학만능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저자의 분석은 예리해 보인다. 책 내용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지금 유튜브에서 10개의 에피소드로 만날 수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세계관, 한국교회의 숨구멍 될까] 지금, 다시 당신의 세계관을 점검하라
입력 2018-11-30 00:06 수정 2018-12-1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