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웃으며 회상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간암 판정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건강검진을 하다 간암을 발견한 의료진은 “간경화 증세가 심해 간이 다 죽었고 손을 쓸 수도 없다”며 “이식밖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간암 1∼3기도 아니고 “간이 다 죽었으니 이식부터 받으라”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모른다.
50대에 죽음을 맞닥뜨리자 두렵기보단 너무 갑작스러워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기도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엔가는 밤새도록 잠이 안 와 새벽에 눈을 떴는데 문득 내 자신이 죽은 나사로처럼 돌무덤에 갇힌 것 같았다. 온통 사방이 다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나는 종종 집회에서 고난을 당한 성도들에게 “위기로 사방이 막혔다고 느낄 때 한 번쯤은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어보자. 그래도 하늘은 열려있으니”란 식의 조언을 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고난을 당하니 하늘도 닫혀있는 것 같았다. 그저 차가운 돌무덤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때 갑자기 ‘주는 평화’란 찬양이 떠올랐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염려 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이 가사는 하릴없이 죽음만 기다리던 내가 고난을 끝까지 이겨내게 한 원동력이 됐다.
내 인생을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역경’보다는 ‘자아와의 갈등’으로 점철된 삶이라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1984년 예수를 본격적으로 믿은 후로 지금까지 주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가스펠 가수로 활동할 때도 그랬다. 교회가 기독교 문화의 가치를 깨닫지 못할 때, 나는 세상 어디서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했다. 그래서 찬양에 힙합과 트로트 등 온갖 장르를 결합해 무대를 꾸몄다. 기독교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아파트 한 채 값의 비용을 매 음반 제작에 쏟아 부었다.
‘하나님, 내가 할 테니까 잘 따라오기만 하세요.’
이게 내가 34년간 주님을 섬겨온 방법이었다. ‘최고의 하나님을 최고의 방법으로 찬양하자’는 고집으로 12집 앨범을 포함해 30여장의 음반을 냈다. 일각에서는 200만장 가까이 판매되는 기록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지금은 마음가짐이 전혀 다르다. 열정과 추진력을 갖고 최고로 찬양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은혜’다.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나의 나 된 건 ‘하나님의 은혜’일 따름이다. 이제 이 은혜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약력=1962년 서울 출생. 85년 서울대 성악과 졸업. 85∼88년 서울시립합창단원. 87년 극동방송 주최 6회 복음성가 경연대회 대상. 88년 1집 앨범 ‘살아계신 하나님’ 발표. 2002년 미국 매네스 음대 성악과 졸업. 현 한동대·전주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