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공권력, 의심받는 법치

입력 2018-11-28 18:54 수정 2018-11-28 23:04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유성기업 노조원의 간부 폭행 사건 당시 경찰 대응이 공권력 불신 논란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조원의 집단 폭행은 공권력을 무시한 사적 보복 성격을 띠고 있다. 폭력보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폭행 현장에서 경찰력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해 공권력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27일 발생한 전대미문의 대법원장 차량 화염병 테러 역시 바닥으로 떨어진 한국 사회 공권력의 위신을 방증한다.

정치권은 28일 유성기업 사태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무기력함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노조원들이 기업 임원들을 폭행하는 사태는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경찰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장 화염병 투척 사건에 대해선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중대 행위”라고 비판했다.

야권은 사실상의 ‘공권력 사망선고’를 내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이 권력에 취해 세상을 자기들 것처럼 여기고 국회와 검찰청사까지 점거하겠다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이를 방조했다”(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기득권이 된 거대 노조와 그 노조에 빚진 정부·여당이 비상식적이고 무법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 등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 공권력 불신의 악순환을 초래한 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유성기업 사태에서 경찰은 가해자 측이 고마워할 정도로 직무유기를 했다”며 “안하무인격으로 권력화된 노조와 이를 용인하는 정부, 그 눈치를 보고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 경찰이 만들어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가나 법이 국민을 구제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감이 사회에 확산될 경우 사적 행동에 나서는 사례가 빈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민원 폭주 현상 역시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이 사회 시스템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는 대신 청원 게시판을 통해 ‘동조세력’을 형성한 뒤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재판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사법 피해자’를 자처하며 돌발행동을 보일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장 테러사건은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부가 극도의 불신을 받고 있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은 국민의 분노가 생각보다 커 보인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소송 당사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시민은 ‘정의의 사도’로서의 개인을 생각하게 됐다”며 “시민의 주체적 의식과 행동은 긍정적이지만 분별력 없는 행동은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권력 남용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상”이라며 “해결책은 수사기관과 사법 당국 등 공권력이 적법한 원칙과 절차를 따르고 공정하게 대응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지호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