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그림책을 한 권씩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에 늘 긴장하며 머뭇머뭇하는 버릇에 대한 스스로의 처방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또 누구보다 말을 전하는 나 자신이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마음이 풀어지고 말도 풀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지금은 아예 그림책 강사라고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성경묵상과 언어’에 관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피터 레이놀즈의 ‘단어수집가’라는 그림책을 소개했다.
우표를 모으거나 곤충을 채집하거나 인물카드를 모으는 수집가들이 있지만 책의 주인공인 제롬은, 자신만큼은 낱말을 모으는 단어수집가라는 사실을 밝히며 책이 시작된다. 제롬은 이야기를 듣다가, 길을 가다가, 책을 읽다가 관심이 가는 단어, 눈길 끄는 단어들을 모아 자기만의 낱말 책을 만들었다. 단어가 점점 많아져서 분류를 시작했고, 분류된 낱말 책을 옮기다가 그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단어들이 날아가 모두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슬픈 일이었다. 그런데 제롬이 그 단어들을 하나씩 줄에 매달다보니 나란히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해 본 단어들이 오히려 재미있는 문장으로 만들어졌고 그대로 따라 읽자 한 편의 시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수집한 단어들이 서로 어울려 뜻밖의 문장들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롬은 더 많이 행복했고, 그래서 더 많은 낱말들을 모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날려 보냈다. 제롬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자기가 모은 낱말들을 날려 보내는 멋진 장면에 내 눈이 오래 머물렀다.
우리 교회의 설교자들과 교사, 집필자들이 이처럼 저마다 일상에서 행복하게 모아놓은 성경의 낱말들을 주일 강단에서, 성경공부 모임들에서, 책들에서 맘껏 뿌려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비트겐슈타인)라고 했는데,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어휘가 너무 부족해서, 혹은 모아놓은 단어들이 너무 뻔한 것들이어서 성경의 깊은 뜻을 설명하는 데 자주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마음사전’이라는 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준 김소연 시인이 펴낸 ‘한 글자 사전’에는 하나의 낱말이 품고 있는 놀라운 발견들이 담겨있다. 시인은 ‘더’라는 낱말 하나에서 “타인에게 요구하면 가혹한 것”이 되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면 치열한 것”이 된다는 의미를 길어 올렸다.
같은 낱말일지라도 욕심을 내서 타인에게 요구하면 가혹한 것이 되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면 ‘더’ 애쓰라고 채근하는 것이니 치열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단 한 개의 낱말이지만 곱씹고 곱씹어서 전혀 다른 뜻을 보여주는 극진한 마음이 읽힌다. 또 “한(韓)국어가 언어의 표준을 자임할 때, 표준에서 배제된 언어는 한(恨)국어가 된다”고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언어를 세밀하게 담은 이문영 기자의 ‘웅크린 말들’이라는 고마운 사전도 있다.
우리말사전 동심언어사전 가치사전 어린이인성사전 등 새로운 사전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으며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단지 단어의 뜻과 용례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단어가 지니고 있을 법하지 않은 의미까지도 새롭게 찾아내기 위해 애쓴 저자들의 정성에서 우리 교회의 언어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가 어린이를 향해서도, 청소년을 향해서도, 여러 배경의 교인들을 향해서도 몇 개 안되는 단어들로 말투만 달리해서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않은지 아프게 살펴본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은다.”(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고 했는데,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건너야 할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는 그들이 건널 수 있도록 어떤 배를 엮어주고 있는지 묻고 또 물을 일이다. 증오와 불신의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기 위해 여기서 나부터라도 성경의 낱말 하나의 뜻을 풀어가며 나만의 사전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김주련 (성서유니온선교회 대표)
[시온의 소리] 성경 낱말 사전 만들기
입력 2018-11-2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