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 현장서 즉시 체포한다

입력 2018-11-27 18:39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정부가 가정폭력 가해자를 경찰이 현장에서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내놨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가정폭력 가해자에게는 징역형을 받게 하는 등 가해자 처벌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달 22일 발생한 이른바 ‘서울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이 대책이 나온 배경이다.

예전보다 진일보한 내용이 담겼지만 가정폭력 범죄가 ‘반의사 불벌죄’의 범주에 계속 남아 있게 된 건 한계로 지적된다. 가해자가 상담에 응하면 기소하지 않는 ‘조건부 기소유예’가 유지되는 게 아쉽다는 목소리도 크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경찰청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전처 살인사건 이후 경찰의 미흡한 사건 처리와 가해자 관리 소홀이 도마 위에 오르자 대책 마련을 서둘러왔다.

발표된 대책에서 핵심은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즉시 체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경찰이 쉽게 초동 대처할 수 있도록 가정폭력처벌법상 ‘응급조치’ 유형에 ‘현행범 체포’를 추가할 계획이다.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가해자를 즉시 연행할 수 있게 된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하고 피해자에게 다가갔을 경우 형사처벌 수위도 높아진다. 지금은 과태료만 부과되지만 앞으로는 ‘징역 또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접근금지 대상은 ‘특정 장소’에서 ‘특정 사람’으로 변경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현장에서 즉시 체포하는 것과 접근금지명령 위반 시 형사 처벌하는 건 현재 관련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정부 입장이 정해진 만큼 입법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민센터와 경찰 등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 공시제한’ 교육도 강화한다. 전처 살인 사건 피해자의 큰딸 김모(22)씨는 지난달 30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주소지가 분리돼도 가족관계증명서와 같은 서류를 통해 (피해자 거주지 관련) 정보가 유출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가정폭력 가해자가 상담에 응하는 조건으로 불기소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존치됐다는 점에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가정폭력의 정도가 심한 경우 기소유예 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정도’라는 개념이 정서적·성적 폭력은 고려되지 않고 신체적 폭력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제도 자체의 효과가 없으면 당장 폐지하겠지만 가정폭력 상담소 등에선 제도에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여성 단체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규정도 고쳐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가정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제9조는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 표시를 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 표시를 철회한 경우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한다’고 돼 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