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19장과 누가복음 18장에도 동일하게 기록된 사건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때 한 청년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꿇어앉습니다. 이 청년은 관리였습니다. 중동 지방에선 30세를 넘겨야 고급 관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은 30대 초반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부자였습니다. 성공하고 젊고 돈이 많았습니다. 또 겸손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요즘처럼 돈 좀 있다고 막말하고 갑질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영적 갈망이 있었습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가졌고 누렸으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세에 대해 열려 있었습니다. 영적 갈급함이 컸습니다. 이 갈망과 열린 마음은 한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계명 중 일부 계명들을 말씀하실 때 “내가 그것을 어렸을 때부터 다 잘 지켰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청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영적 발돋움을 위해 그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21절)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그 해맑던 얼굴빛이 확 달라집니다. 근심이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그 한 가지 부족함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청년이 돌아간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이야기를 이어 가십니다. “얘들아,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단다.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단다.”
그때 제자들은 매우 놀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아니, 그럼 누가 도대체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것이 그 부자 청년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진정한 메시지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무엇을 해야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구원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 되신 그분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수가 흐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의 유혹, 집착, 고정된 관심의 끈을 놓고 그것을 뛰어넘을 때 영적 분별력, 영안(靈眼)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솟아나는 생명의 강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능치 못 할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의 영역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물질도, 건강도, 자녀축복도, 시간도, 집도, 인생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을 인정하며,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물질을 얻는 데 있지 않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범사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보다, 말씀보다 앞서지 않는 성령충만한 삶을 뜻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선한 일을 이뤄 가십니다. 내 삶에서 한 가지 부족한 것, 그것을 항상 인정하며 순종의 길을 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재풍 서울 신림제일감리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한 가지 부족한 것
입력 2018-11-28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