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화려한 파고다 근처서 맨발로 쓰레기 줍는 여덟 살 소녀

입력 2018-11-28 00:01
김학중 꿈의교회 목사가 지난 5일 캄보디아 푸옥 지역 콜크치레이 마을의 파고다 인근에서 8살 소녀 앰을 도와 빈병을 줍고 있다.
김학중 꿈의교회 목사가 지난 6일 푸옥 지역에서 힘겹게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니엠씨를 위로하는 모습.
지난 7일 캄보디아 푸옥 지역의 월드비전 자원봉사자들이 현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랑의 언어’ 수업 효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와 오래된 가난을 안고 사는 나라다. 하루 3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가 72%, 5세 미만 영유아 세 명 중 한 명은 영양실조 상태다. 경기도 안산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는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이 국민일보와 공동 기획한 ‘밀알의 기적’ 캠페인 참석차 씨엠립 인근 푸옥 지역을 찾았다.

소녀의 꿈, 가난을 이겨내고파

김 목사와 월드비전팀이 지난 5일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서 가까운 솔솔스돔 지역의 콜크치레이 마을이었다. 8살 여자아이 앰 파브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집엔 할머니 히브(59)씨가 혼자 있었다. 주변 집들에 비해 허름할 뿐 아니라 더위와 습기를 피하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주거용으로는 부족해보였다. 나무 평상에 이불과 옷 몇 장이 전부인 공간을 침실 삼아, 작은 화덕과 그릇 몇 개 있는 곳을 부엌이자 주방 삼아 사는 게 전부였다.

앰은 여기서 할머니와 둘이 산다. 엄마와 아빠는 앰이 5살 때 이혼한 뒤 재혼했다. 아빠, 새엄마는 앰을 데리고 지내다 지난달 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할머니 히브씨는 “새엄마가 먹을 것을 앰에겐 주지 않았다”며 “엄마 사랑이 부족한 손주여서 늘 마음이 아프고 짠하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나뭇잎으로 매트를 엮어서 5∼7달러 정도 받고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먹고 살기 빠듯해 앰은 틈나는 대로 할머니를 돕기 위해 일을 한다. 우기엔 논에서 게를 잡아 팔지만 11월부터 건기가 시작되면 이마저 없어 길에 떨어진 병과 캔을 줍는다. 캄보디아는 인구의 90%가 불교를 믿는 국가라 동네마다 파고다가 있다. 집 근처 파고다에서 맨발로 마른 나뭇가지에 발을 긁히면서도 빈병을 줍고 있는 앰을 만났다.

김 목사가 처음 말을 건네자 아이는 수줍음과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잠시 아버지 이야기를 하자 얼굴에 슬픔이 차올랐다. 김 목사는 “오늘 하루 동안 내가 아빠 역할을 해줄게”라며 아이의 손을 잡고 빈 병을 주우러 나섰다. 평소 1주일에 한 번 가득 채운 자루를 팔지만, 1달러를 받기도 쉽지 않다. 이날은 김 목사의 도움으로 평소보다 수월하게 자루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김 목사는 자루를 들고 앰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준비한 쌀과 고기로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더운 움막 안에 밥 짓는 연기와 화덕 열기가 가득 차 땀을 연신 닦아냈다. 김 목사가 준비한 밥을 먹으며 할머니는 “이렇게 쌀밥과 고기를 걱정 없이 먹어본 게 몇 달 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식사 후 김 목사는 앰과 함께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 조금 친해진 후에도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만 보이던 앰은 비눗방울을 보며 비로소 활짝 웃었다. 앰에게 꿈을 물었다. 앰은 “빨리 커서 돈을 많이 벌어 할머니랑 좋은 집에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잊고 있던 찬송을 다시 부르다

이튿날 김 목사와 월드비전팀은 14개월 된 딸 스레이니치를 키우는 엄마 니엠(22)씨를 찾아갔다. 18살 때 벽돌공장에서 일하다 만난 남편 쵸엠(27)씨와 결혼한 그녀는 어렵게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인근 벽돌공장에서 일하느라 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한다. 일행이 도착한 아침, 니엠씨는 주변 웅덩이에서 더러운 물을 길어다 빨래를 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이날 남편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모녀를 위해 일일 도우미를 자청해 손빨래부터 시작했다. 니엠씨는 아이를 키우는 짬짬이 돈을 벌기 위해 인근 논에 나가 벼를 벤다. 그늘 하나 없이 30도를 웃도는 땡볕에서 이날 김 목사는 장화를 신고 니엠을 도와 벼를 벴다. 돌아오는 길, 이들은 니엠이 주일학교 때 다니던 교회 예배당에 잠시 들렀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2년 만에 오게 된 교회. 작은 예배당에서 김 목사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로 시작하는 찬송을 불러줬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잠자코 듣고 있던 니엠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더니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운 찬송가를 들려줬다. 김 목사와 함께 기도를 한 뒤 니엠은 “다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말라리아 방지용 모기장을 치고 꿈의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는 것으로 만남을 마무리했다.

김 목사는 “어렵고 절망스러운 환경 속에서 사는 이들에게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안고 왔다”며 “하지만 남을 원망하는 대신 묵묵히 가족을 사랑하고 지키려 애쓰는 이들의 모습과 우리는 잠시 돕고 돌아가지만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하시며 보호해주시리라는 생각에 더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물질적으로 가난할지 몰라도 이 사람들의 영혼은 더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눈에 보이는 기준을 앞세운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들을 찾아 도울 때에 우리가 주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도 많다”고 말했다.

▒ 월드비전이 푸옥 지역서 벌이는 ‘사랑의 언어’ 수업
체벌 대신 사랑으로… 자녀 양육 교육에 남성들도 관심


월드비전은 캄보디아 씨엠립 푸옥 지역에서 교육 및 보건 지원, 아동보호 및 아동결연 등으로 지역 주민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현재 한국 월드비전과 결연을 한 아동 수는 3250여명이다. 깨끗한 식수 확보, 학교 교육 환경 개선 등 어느 것 하나 급하지 않은 일이 없다. 기본적인 시설 확충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부모들을 상대로 양육 및 영양 관련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가난 때문에 돈을 버느라 상급학교 진학이 어렵다. 아동 노동 참여 비율이 56.9%이고 고등학교 등록률은 17%에 불과하다. 자녀 양육 방식에 있어서도 부모가 체벌 등 폭력을 이용할 때가 적잖다. 18세 미만 (성)폭력 피해 아동도 56%나 된다.

지난 7일 찾아간 푸옥 지역 마을에서는 자녀 양육에 필요한 ‘사랑의 언어’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평일 낮에 아버지들이 교육받는 일은 매우 드문데 지난해부터 4시간 수업 12개를 사흘에 나눠 진행한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지역 남성들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어머니들을 대상으로는 영양과 모유수유 등 양육에 관련된 교육을 진행한다. 캄보디아의 5세 미만 영유아 영양실조율은 32%다. 당장 굶어죽는 일은 적지만 만성적 영양실조 때문에 어려서 생명을 잃는 아이들이 있다. 월드비전은 단순 식량 지원 대신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서로 돕고 나누며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있다. 먼저 한 집에 모여 쌀 오일 야채 고기 계란 같은 단백질 식품을 갖고 영양볶음밥을 만들며 기초적인 식품 영양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특히 각 집마다 사정에 맞춰 갖고 있는 음식을 나누고 모아서 아이들의 한 끼니를 함께 만든 뒤 나눈다. 영양식에 대해 처음 배운 뒤 각 가정에서 적용해볼 수 있도록 가정방문 모니터링도 한다.

츠로닝 마을의 한 주민은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5살 딸이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그 전엔 혼자서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니 좋다”고 말했다.

푸옥(캄보디아)=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