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직 꿈 갖도록 보듬는 ‘아름다운 동행’

입력 2018-11-27 04:01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IT기업 테스트웍스에서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테스트와 인공지능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 가공을 하는 이 회사 직원 중 절반가량은 장애인과 경력단절 여성 등 소위 ‘취약계층’이다. 최종학 선임기자
테스트웍스 윤석원 대표
서울시는 2013년부터 매년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을 대상으로 사회적경제 우수 기업을 선정해 오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기업 중 경영이나 고용, 노동과 같은 일반적인 운영 여건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함께 진행해 우수 기업을 선정한다. 인증은 매년 이뤄지며 지속발전 가능성이나 사회적 가치 구현 등을 평가해 1년 단위로 연장된다.

서울시가 사회적경제 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 때문이다. 남들보다 불리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구직 기회는 더디 찾아온다. 아예 찾아오지 않는다고 여기고 절망하는 경우도 많다. 경력단절여성이나 장기실업자, 저소득층, 장애인의 이야기다.

삶을 뒤흔들 만한 거창한 기회는 아니지만 이들이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회사가 있다. 서울 송파구의 IT기업 테스트웍스 윤석원 대표는 지난 21일 인터뷰에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직원들에게 가능성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테스트웍스는 소프트웨어 개발 테스트와 인공지능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 가공 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전자 등을 거친 윤 대표가 장애인이나 경력단절여성 등에게 고용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전체 34명의 직원 중 장애인과 경력단절여성,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비율이 47%에 달한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같은 해 12월 서울시 사회적경제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취약계층’이라는 단어 대신 ‘다양한계층’이라는 말로 직원들을 소개했다.

테스트웍스 사무실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김모(25)씨와 박모(28)씨는 자신의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들은 의뢰를 받아 자율형 주행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될 빅데이터를 가공하고 있었다. 블랙박스로 찍은 도로 상황을 차량 종류와 보행자 등 특성에 맞게 이미지를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마우스를 잡은 김씨와 박씨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업무에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인 직원의 특성상 데이터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다.

IT업계는 안정적인 인력 운용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늘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이직이 잦기 때문에 소속감을 갖고 일하는 직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테스트웍스는 달랐다. 경력단절여성이나 장애인들은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회를 준 회사에 대한 만족감이 높고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사에서 4년 넘게 근무한 안미영(51·여) 과장은 경력단절 기간이 14년이다. 안 과장은 편집디자인 회사에 다니다 2002년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둘째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직장을 알아봤지만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고, 경력을 살릴 직업을 찾기란 더 어려웠다. 테스트웍스에 입사하게 된 안 과장은 “딸들에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회사도 성장했다. 지난해 테스트웍스의 매출은 6억원이 됐다. 3년간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통해 90% 이상이 국제테스터자격증(ISTQB)을 취득했다. 하지만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성과들이 있다. 장애인 가족을 둔 가정의 수심을 덜어줬고,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만 살던 여성들에게 이름과 함께 자존감을 선물했다.

그렇지만 사회적경제 기업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윤 대표는 말했다. 윤 대표는 “오랜 시간 일하지 않았던 경력단절 사원이나 장애인은 특성상 업무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직원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이 기간을 견디면 이들은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으로 더 큰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시간과 인력이 곧 비용인 일반 기업에서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사회적경제 기업이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윤 대표는 “서울시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진플러스 박준영 대표는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딸 세진이를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세진플러스는 의류 회사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폐섬유를 재활용해 친환경 건축자재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건축자재로 친환경 주택을 지어 해외 난민을 위한 친환경 조립주택을 수출하거나 국내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폐기물로 만드는 건축자재다 보니 비용이 절반 수준인 데다 폐기물 처리에 효과적이어서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사회적경제 기업으로 단순히 장애인을 고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사업 개발 투자를 계속해 ‘장애인 사관학교’를 만드는 것이 박 대표의 꿈이다. 박 대표는 “회사 인지도나 제품에 대한 브랜드가 없다 보니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에서 해주는 홍보나 마케팅이 큰 도움이 된다”며 “개발이 완료된 만큼 내년에는 취약계층에 대한 신규 채용을 더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경제 우수 기업은 비즈니스 영역도 다양하다. 취약계층에 집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희망하우징은 2009년 설립 이후 2016년 서울시 사회적경제 우수 기업에 선정됐다. 서울시 희망의 집수리 사업을 위탁받으면서 자리를 잡았고 공공기관뿐 아니라 기업과 시장 등 집수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희망하우징을 찾기 시작했다. 설립 첫해 약 2억8000만원이던 매출은 현재 약 18억원에 달한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