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인웅 (25·끝) 화해·일치 위해 노력했던 여정에 감사

입력 2018-11-28 00:07 수정 2018-11-28 09:06
손인웅 목사가 지난 23일 서울 덕수교회 일관정에서 못을 박아 만든 십자가 작품을 들고 희생과 겸손, 낮아짐을 통해 한국교회가 화해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갱신의 결실은 연합과 일치다. 하나 됨이다. 1997년 10월 23일의 일이었다. 서울 사랑의교회 복지관에서 열렸던 한국장로교목회자협의회(장목협) 창립 기자회견에 나를 비롯해 전병금 옥한흠 윤희구 목사가 나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장목협에 참여했다. 상임회장은 옥한흠 목사였고 나는 공동회장 중 한명으로 봉사했다.

그날 이런 말을 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상의 교회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개혁과 갱신이 필요합니다. 각 교단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개혁과 갱신이라는 공통의 지향점이 있습니다. 이 모임이 교단들이 변화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목회자들의 뜻도 같았다. 함께 변화를 꿈꿨다.

13개월이 지난 98년 11월 16일 장목협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로 외연을 넓혔다. 14개 교단이 참여했다. 내가 장목협 상임회장으로 있을 때였다. 90년대 말에 한국교회는 개혁과 갱신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때 내건 기치가 ‘하나 되어(uniting) 거룩하고(renewal) 사랑하게 하소서(diakonia)’였다.

한목협 지도부는 흩어져 있던 교회연합기구를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회원교단들도 동의했다. 98년 6월 16일 경기도 광주 소망수양관에서 열린 수련회에서 처음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통합 추진이 선포됐다. 논의는 점차 구체화됐다. 2002년엔 한목협 주도로 ‘한국교회 일치를 위한 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가 태동했다. 본격적인 연합운동의 시작이었다.

교단장협과 NCCK, 한기총이 각각 6인의 대표를 파송해 18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나는 한기총 일치위원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논의는 빠르게 진전됐다. 3개 기관이 아홉 차례 회의를 가졌고 실무위원회는 열두 차례 모였다. 논의의 말미엔 3인 위원회로 압축됐다. 기구통합이 점차 가시화됐다.

통합 발표만 하면 될 상황까지 대화가 진전됐다. 2007년 11월 13일 연합을 위한 10차 공청회를 열기로 했는데 갑자기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숨 고르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공청회가 12월 13일로 연기됐다. 이걸로 끝이었다. 그날 늦은 저녁 옥 목사님을 찾아갔다.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화도 났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안타까움이 컸다.

지금 돌아보면 화해와 일치를 위해 힘썼던 시간들이 한없이 그립다. 아쉬움도 크다. 끊임없이 갱신하고 자기와는 다른 상대를 섬겨야 한다. 자기 비움과 낮아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다.

최근 교회 연합기구들의 통합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이 논의는 반드시 결실을 맺길 바란다. 보수기구들이 먼저 통합하고 NCCK와 대화해도 늦지 않다.



요즘 들어 옛 생각에 빠질 때가 많다. 삶의 자리를 하나하나 살펴본다. 화해와 일치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여정이었다. 한국교회의 화해를 위한 중재자로서의 삶,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었다. 은퇴한 목사로서 늘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 교회가 하나 되게 하소서. 화해하고 일치하게 하소서.”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