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2016년 6월 8일 경기도 성남 SK바이오팜 판교 생명과학연구원을 찾아 ‘SK바이오팜의 판교 시대를 축하합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로 성장하는 주춧돌이 되기를 축원한다’는 글을 남겼다. 최 회장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보고 지속적인 투자를 주문해 왔다. 특히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신약 개발을 하는 SK바이오팜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의 장녀 윤정씨도 지난해 6월 SK바이오팜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독자 개발한 뇌전증(뇌 특정 부위에 있는 신경세포가 흥분해 발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 신약 후보물질 세노바메이트(Cenobamate)의 신약 판매허가 신청서(NDA)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고 26일 밝혔다. 국내 기업이 독자 개발한 신약을 기술 수출하지 않고 FDA에 NDA를 제출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임상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을 해 왔다. 신약 개발에 따른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술 수출의 경우 수익이 발생하면 파트너 업체와 나누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했다. 자체 판매까지 이뤄지면 신약이 창출하는 모든 가치를 독점할 수 있게 된다. 영업이익률도 50% 이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유럽, 미국 제약사들이 점령하고 있는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신약 주권 달성을 통한 국가 위상 제고도 노릴 수 있다. 때문에 SK바이오팜의 이번 NDA 신청은 국내 제약 업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판매 허가가 나면 2020년 하반기에는 미국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SK바이오팜은 예상한다. 뇌전증 의약품 시장 규모는 올해 62억 달러(약 7조원)에서 2022년 69억 달러로 성장이 예상된다.
SK로서는 신약 개발에 뛰어든 지 25년 만에 큰 결실을 거두게 됐다. SK바이오팜은 1993년 당시 유공 대덕기술원의 신약개발연구팀에서 출발했다. 2007년 SK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주회사 직속으로 신약개발사업부가 신설됐고, 2011년 물적 분할을 통해 SK바이오팜이 설립됐다. SK 관계자는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태원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장기간 지속적인 투자를 계속해 왔다”고 설명했다.
많은 제약사가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을 하지만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에 역량을 쏟고 있다. 세노바메이트의 경우 2001년 후보물질 탐색을 시작으로 2007년 신약 임상시험 신청(IND) 승인을 받는 등 지금까지 18년간 연구·개발에 매진해 왔다. SK바이오팜은 국내 최다인 16개 신약후보 물질의 IND를 FDA로부터 확보했다.
바이오·제약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SK㈜는 SK바이오텍을 중심으로 한 원료의약품 생산 사업에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작년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 인수에 이어 지난 7월에는 미국 바이오 위탁개발 및 생산 업체(CDMO) 앰팩 인수에 성공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SK바이오팜, 독자 개발 신약 국내 최초 FDA에 판매 신청
입력 2018-11-26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