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울타리 벗어나 ‘마을목회’ 합니다”

입력 2018-11-27 00:01
행복이 가득한 교회 최준 목사가 주민들과 함께 만든 후암동 문화마을지도를 들고 25일 성도들과 동네 탐방을 하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최 목사 둘째 아들 최율군, 양금희 사모, 최 목사, 김진희씨, 정창곤씨. 강민석 선임기자

지하철 서울역 11번 출구에서 나와 후암로를 따라 10분여를 올라가면 세련된 단팥죽·팥빙수 전문점이 나온다. 불과 2년 전까지 칙칙한 술집이었던 곳이 지난해 9월 주인이 바뀌며 새 단장에 들어가더니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파라다이스였던 주점 이름은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바뀌었다.

이곳 사장은 옆 동네 한남제일교회에서 18년간 부목사로 사역했던 최준(45) 목사다. 교회 울타리를 벗어난 지 1년, 최 목사는 교회 부목사에서 한 가게의 사장이자 후암동 주민이 됐다.

행복이 가득한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근처 어딘가 있다는 ‘행복이 가득한 교회’를 찾긴 쉽지 않았다. 가게 직원에게 물으니 “사무실이요?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한 대로 갔으나 교회 간판이나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 동네 문방구 주인에게 물었다. 그는 “교회요?”라며 직접 안내까지 해줬다. 최 목사는 9.9㎡(3평) 남짓한 곳에서 4명의 성도와 막 예배를 드리던 참이었다.

25일 만난 최 목사는 가게에서 예배를 드리다 이곳으로 온 지 3달 정도 지났다고 했다. 가게는 상업시설이다 보니 예배를 드리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 공간도 예배 장소로만 한정해 사용하진 않는다. 평일엔 집에서 공부하기 힘든 마을 학생들에게 학습 장소로 내어준다. 그는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가리키며 “한 칸씩 마을 주민에게 내줘서 ‘공동 문고’로 사용해 볼까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가 교회를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곳곳에 주민 모임이 있었다. 한남제일교회 부목사 시절부터 용산마을센터장으로 섬기며 마을 관련 일들을 나름 해왔다 생각했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 다행히 팥빙수 가게가 마을 주민들과 가까워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최 목사는 이들과 함께 ‘남산자락 후암동 문화마을지도’를 만들었다. 탐방코스와 역사문화시설은 물론이고 단체 및 모임 정보도 담았다. 그는 “교회가 시민사회로 들어가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교회는 시민사회를 잘 모른다”며 “시민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단위가 마을이다. 마을을 잘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마을지도를 하나 쥐어 주더니 동네 탐방을 제안했다. “제겐 동네가 교회요, 주민이 교인”이라는 말도 했다. 마을 곳곳을 소개하는 최 목사의 시선에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행복이 가득한 집을 열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고맙다’였다. 밝은 가게가 들어와 후암로가 밝아졌단 얘길 많이 했다”며 “마을목회는 ‘마을을 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주민과 함께 마을을 살리는 꿈을 꾼다. 주민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생각은 내려놨다. 그는 “‘위해서’는 상대와 나를 구분 짓는 느낌이 있다”며 “나 역시 주민으로서 함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뭔가를 만들어 놓고 오라 하면 거기서부터 벽이 생긴다”며 “여기선 주민과 함께 교제하다 필요가 보이면 같이 만든다. 이런 마을목회가 이웃들에게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