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청년실업에 발목… 대만 집권당 지방선거 참패

입력 2018-11-25 18:38
대만 국민당 지지자들이 24일 가오슝 시내에서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든 채 환호하고 있다. 국민당은 이날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22곳 중 15곳에서 승리해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주진보당에 뼈아픈 패배를 안겼다. AP뉴시스

민진, 6곳 승리 그쳐 반타작… 20년 텃밭 가오슝서 대패 ‘野 후보 한궈위 시장 당선’
탈원전 등 밀어붙이다 역풍 脫中 정책 피로감도 한몫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주진보당(민진당)이 24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고질적인 청년실업과 저임금 문제, 성급한 정책 추진에 따른 국정 혼란, 탈중국화 정책에 대한 피로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대만의 올림픽 참가 명칭 변경’ 안의 국민투표 부결은 중국의 끊임없는 압박에 대만 유권자들이 안정을 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선거 패배로 차이 총통은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해졌다.

25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국민당은 6개 직할시를 포함해 22개 현·시장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15곳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반면 집권 민진당은 6개 직할시장 중 2곳, 16개 현·시장 중 4곳 등 총 6자리를 얻는 데 그쳤다. 민진당은 4년 전 지방선거 때 13곳에서 이번에 6곳으로 줄었고, 국민당은 6곳에서 15곳으로 늘었다.

민진당은 특히 20년간 텃밭이었던 남부 가오슝에서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국민당 소속의 한궈위 가오슝 시장 당선자는 흑색선전이나 비방·인신공격은 하지 않고 지역경제와 민생 살리기에만 집중하는 선거 방식으로 이른바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켰다. 국민당의 압승은 그의 영향이 컸다. 타이베이시에서는 무소속 커원저 후보가 딩서우중 국민당 후보를 근소하게 앞섰다. 차이 총통은 선거 결과가 기울자 “집권당 주석으로서 선거 결과에 완전한 책임을 지겠다”며 주석직 사퇴를 선언했다.

민진당의 참패는 경제 악화로 청년실업과 저임금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탈원전, 연금개혁, 동성혼 허용 등 각종 정책을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다 역풍을 맞은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의 최근 실업률은 3.7% 정도인데 20∼24세 실업률은 12.8%에 달하는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일자리가 없어 동남아로 간 젊은이들이 최근 3년간 2%나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차이잉원 정부는 청년층 일자리 개선을 위해 10년가량 동결됐던 최저임금을 2016년 5%, 2017년 5.6% 인상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상승은 오히려 젊은층의 취업난을 가중시켰다. 정부는 또 ‘주5일 근무제’를 담은 노동법을 개정했다가 노사 양측의 불만을 초래했다.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시간 단축까지 겹쳐 인건비와 물가상승, 투자·고용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반발했고, 노동계에서도 일자리와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불만이 확산됐다. 결국 차이잉원 정부가 지난 2년간 좌충우돌하며 혼란만 초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에서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차이니스 타이베이’ 대신 ‘대만’으로 참가하자는 안건이 전체 유권자의 25%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해 부결됐다. 차이 총통은 집권 후 ‘탈중국화’ 정책을 펴왔지만 중국은 대만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하고 수교국들에 ‘대만과의 단교’를 유도하는 등 전방위로 대만을 압박해 왔다. 중국은 이번 국민투표를 ‘변형된 독립 기도’로 규정하고 무력 동원까지 거론하며 위협했다.

마샤오광 중국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이번 선거 결과는 양안의 평화적 발전을 공유하려는 대만 민중의 희망을 반영했다”며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분리주의자들에 단호히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투표에서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 제한(동성결혼 금지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과 원자력발전소 운영중단 시기를 못 박은 법 조항을 없애자는 항목도 통과됐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