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만 해도 힙합은 낯선 장르였다. 빠른 비트에 맞춰 가사를 읊는 음악은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오늘날의 힙합은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로 당당히 편입했다.
“처음엔 욕먹으면서 했거든요. …첫 번째 목표는 지상파 방송에서 힙합을 선보이는 거였어요. 그 곡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1999)였죠.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제겐 오로지 제목만이 중요했어요.”
영화 카메라 앞에 앉은 타이거JK. 한국 힙합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가 힙합에 대한 가감 없는 생각들을 쏟아낸다. 28일 개봉하는 ‘리스펙트’(감독 심재희)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타이거JK를 비롯해 한국 힙합씬을 이끌어가는 래퍼 12명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는다.
출연진부터 쟁쟁하다. 초창기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을 대표하는 MC메타와 딥플로우,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를 함께 이끄는 도끼와 더 콰이엇,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빈지노 산이 스윙스, 개성 뚜렷한 음악을 해나가는 제리케이 JJK 팔로알토가 참여했다.
다큐멘터리를 표방하지만 정확하게는 래퍼들과의 대담을 엮은 영상 인터뷰집이라 할 수 있겠다. 음악평론가 김봉현과 래퍼 허클베리 피가 인터뷰이로 나서 몇 가지 키워드를 던진다. 단조로운 구성의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하나의 이슈를 놓고 첨예하게 갈리는 답변들이다.
특히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Mnet)를 향한 뚜렷한 시각차가 엿보인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 참여했던 타이거JK는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제작돼가는 모습에 회의를 느껴 하차했다고 털어놓는다. 허클베리 피 또한 “경쟁이 싫어 힙합을 좋아했는데, 내가 안 좋아했던 사회의 단면을 힙합이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반면 JJK는 “줄 세워 오디션 보는 게 멋없긴 하지만 이틀 동안 수많은 참가자들을 심사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산이는 “(힙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건 긍정적”이라고, 도끼는 “이미 대한민국 힙합씬은 ‘쇼미더머니’ 없이 힘든 구조가 됐는데, 그럴 바엔 제대로 이용해보자는 생각”이라고 첨언한다.
각기 다른 의견의 공존, 그건 어쩌면 ‘힙합 정신’ 그 자체로 읽힌다. 영화의 제목이 ‘리스펙트’인 이유이기도 하다. “힙합에서 ‘리스펙트’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에요. 내가 당신을 리스펙트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존중하라는 뜻이죠.” 타이거JK의 설명이다.
촬영이나 편집, 연출 등 기술적인 완성도는 떨어진다. 다만 이 영화의 핵심은 ‘진정성’에 있다. 래퍼들이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주제가 전환되는 지점마다 삽입된 래퍼들의 무반주 랩은 다소 어색한 듯 오묘한 감상을 자아낸다. 98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리스펙트’ 욕만 먹다 대세로… 힙합 래퍼들의 솔직대담 [리뷰]
입력 2018-11-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