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차준환(17·휘문고)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에서 2연속 동메달을 딴 그는 한국 남자선수 중 최초로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겨루는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권마저 따냈다. 아직 시니어 무대 데뷔 2년차에다 어린 나이인 것을 감안하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남자선수 사상 첫 메달 수확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남자 김연아’로 불리던 유망주 차준환은 주니어 시절부터 고난도의 4회전 점프와 타고난 연기력, 스타성 등을 겸비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완성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지난 시즌만 해도 그의 경기력은 들쭉날쭉했다. 시니어 무대를 처음 밟은 데다 점프 과정에서의 잦은 실수와 부상, 그리고 성장기 발에 번번이 맞지 않는 부츠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차준환은 가장 큰 무대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경험하면서 부쩍 성장했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 극적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한 것이 경력의 큰 변곡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차준환은 지난 1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한때 1위에 27점차 이상 뒤처졌다가 최종 3차 선발전에서 기적처럼 뒤집는 역전극을 선보이며 동계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그리고 평창올림픽 15위에 올라 한국 남자 피겨의 미래를 밝혔다.
차준환은 올 시즌 4회전 점프의 시도 횟수를 늘리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평창올림픽 당시 1회만 시도했던 4회전 점프를 올 시즌엔 3회로 늘렸다. 이밖에 점프의 높이와 난이도를 높이고, 기술 연계 과정도 한층 매끄럽게 다듬어 높은 점수를 유도했다.
훈련의 결실은 곧바로 나타났다. 차준환은 지난 9월 ISU CS 어텀 클래식 인터내셔널에서 총점 259.78점으로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은메달을 따냈다. 이를 발판으로 지난달 피겨 최고수준의 대회인 2∼3차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연속 동메달을 따내며 랭킹 포인트를 쌓았고 꿈의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다음 달 7∼10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은 그랑프리 1∼6차 대회 상위 6명의 선수가 겨루는 이른바 왕중왕 대회다. 차준환은 한국 남자선수 최초이자 ‘피겨 여왕’ 김연아(은퇴) 이후 9년 만에 세계 최강자들이 나서는 이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올림픽 2연패에 빛나는 하뉴 유즈루(일본)를 비롯해 우노 쇼마(일본), 네이선 첸(미국), 미칼 브레지나(체코), 세르게이 보로노프(러시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차준환은 파이널 진출을 확정한 뒤 매니지먼트사인 브라보앤뉴를 통해 “매 시즌 발전된 모습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이라는 큰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방상아 SBS 피겨 해설위원은 25일 “차준환의 4회전 점프는 지난 시즌에도 기술적으로 좋았지만 부상 문제가 컸다”며 “부상 회복 후 자신감이 상승하면서 점프의 높이가 좋아졌다. 지난 시즌 나왔어야 할 기량이 나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점프 구성 난이도를 높인 게 올 시즌 큰 변화점이라 할 수 있다. 트리플 5종 점프(토루프 살코 루프 플립 러츠)의 연계 과정도 더욱 매끄러워졌다”고 덧붙였다.
차준환은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연기력을 지녔다. 그는 이번 시즌 쇼트프로그램에 발레곡 ‘신데렐라’, 프리스케이팅에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에 맞춰 연기를 펼치고 있다. 방 위원은 “차준환은 남자선수지만 유연한 움직임이 강점이다. 표현력은 물론 여러 음악을 소화하는 능력이 좋아 큰 무리 없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환은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남자 피겨 선수들은 성장기를 지나 근육이 생기는 20대 초반의 나이가 돼야 전성기를 맞는다. 17세 차준환의 앞날에 기대가 큰 이유다. 방 위원은 “차준환의 점프 높이와 체공시간이 길어졌는데, 부상 회복과 더불어 파워도 좋아졌기 때문”이라며 “올 시즌 톱5 안에 들고 차분히 성장한다면 향후 올림픽 메달을 바라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선수로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빅6’ 차준환, 언제 이렇게 컸니?
입력 2018-11-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