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55)씨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술만 마시면 자신을 괴롭히던 아버지를 피해 울산으로 갔고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로 취직했다.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된 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옥중에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면회 온 아버지는 늙고 지쳐 보였다.
김씨는 1996년 주변의 만류에도 산속으로 들어가 경험도 없는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성공해서 가족 앞에 나타나겠다”고 다짐했지만 IMF 외환위기로 모든 것을 잃었다. 김씨는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며 “하늘이 나를 그만 살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노숙생활을 하다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서대문사랑방(원장 김도진)을 찾았다.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해지자 퇴소했지만 2015년 두 번째로 구세군 시설을 찾았다. 술이 문제였다. 무작정 사랑방 근처 교회로 달려갔다. 아무도 없는 지하 예배당 바닥에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 나 좀 도와주세요. 어떻게 살아갈지 가르쳐주세요.”
김씨는 “그 후 술을 끊은 지 2년이 넘었다”며 “꾸준히 일해 건강도 회복하고 저축도 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전에 졌던 채무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김씨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 은혜를 경험했다”며 “이제 나에게 남은 건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김씨가 지난 23일 구세군서대문사랑방에서 들려준 자신의 삶 이야기다. 사랑방은 노숙인 12명의 삶을 담아 ‘홈리스 그림 에세이 나의 인생책’을 지난달 29일 펴냈다. 노숙인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200권 넘는 동화책을 쓴 노경실(60) 작가와 박희경 캘리그래피 작가, 최선관 사랑방 상담팀장이 글과 그림을 도왔다.
처음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자는 제안에 노숙인들은 시큰둥했다. 퇴근 후 늦은 시간 글을 쓴다는 게 피곤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상처를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노 작가는 강아지에 대한 추억부터 글로 적어보자고 이들을 다독였다. 노 작가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마음의 문을 열자 하나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작가는 2013년부터 사랑방에서 노숙인의 인문 활동을 도왔다. 아예 글을 못 쓰던 이도 있었지만 누나이자 여동생, 엄마가 돼 친절히 가르쳤다. 그들을 꾸준히 만나며 서로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노 작가는 “노숙인들이 ‘노 작가는 왜 친절하지’를 생각했을 때 그리스도인이어서라는 생각만 할 수 있다면 성공한 셈”이라며 “요즘은 오히려 제가 사랑받고 은혜받는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노숙인들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새 삶을 꿈꾸게 됐다. 지난 1∼3일 서울시청 앞 지하도에서 책 전시회를 열며 많은 응원도 받았다. 김씨는 “책을 쓰며 내가 참 잘못 살아왔다는 걸 느꼈다”며 “지금부터라도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사랑방은 노숙인의 취업과 매입임대주택 입주를 돕고 있다. 주일이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 말씀으로 사랑과 용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김도진 원장은 “책을 통해 노숙인을 바라보는 경직된 시선이 조금이나마 따스해졌으면 좋겠다”며 “이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진심 어린 관심과 축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들추기 꺼리던 과거 글로 쓰며 돌아보니 새로운 꿈 생겼어요”
입력 2018-11-26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