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양숙입니다’ 한마디에 4억여원 뜯긴 윤 전 시장

입력 2018-11-26 04:02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광주시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2월 보이스 피싱에 속아 4억여원을 사기 당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40대 여성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거금을 보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자신을 권 여사라고 소개한 뒤 딸 사업 문제로 필요하다며 5억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윤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네 차례 4억5000만원을 송금했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선거운동원으로 일하며 여러 지역 유력 정치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이 여성은 윤 전 시장을 비롯해 10여명에게 똑같은 수법의 사기를 시도했다. 이 중 유독 윤 전 시장만 쉽게 속아 넘어간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기반이 약했던 윤 전 시장이 민주당 핵심세력인 친노·친문 그룹에 영향력을 가진 권 여사에게 공천 청탁을 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이름까지 사칭한 이 여성이 다른 단체장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으로 미뤄볼 때 충분조건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7억원 가까운 재산을 신고한 윤 전 시장이 4억원이 넘는 거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규명돼야 한다.

청와대를 사칭한 사기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권력을 등에 업으면 준 것 이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한탕주의가 여전히 사회에 팽배하다는 방증이다. 최근에도 임종석 비서실장, 한병도 정무수석, 이정도 총무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는 물론 심지어 문 대통령을 사칭한 사기사건이 잇달아 적발됐다. 보이스 피싱 사건 피해자가 대부분 일반인이라면 청와대 등을 사칭한 이른바 ‘권력형’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는 권력의 반대급부를 바라는 잠재적 비리 연루자라는 특징이 있다. 청와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청와대 사칭 사기주의보를 발령하고 있음에도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권력과 거래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