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산이가 지난 16일 발표한 노래 ‘페미니스트’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산이는 영어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며 시작하는 노래를 통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적잖은 배려를 누리고 있다면서 남성이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미투 운동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여성이 남성에게 많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곡을 두고 많은 여성들은 명백한 여성 혐오의 음악이라며 분노했다.
한편 페미니즘을 가장한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혐오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하던 남성들은 산이를 열렬히 응원했다. 최근 서울 이수역 근처 한 술집에서 일어난 이른바 ‘이수역 폭행 사건’을 계기로 남녀 대립이 첨예해진 터라 ‘페미니스트’는 날로 확산되는 이성 간 혐오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이후 래퍼 제리케이와 슬릭이 산이를 향한 비방과 페미니즘에 대한 옹호를 함께 드러내는 음원을 선보이면서 논쟁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산이의 노래로 시작된 공방은 지난 19일 산이가 SNS에 본래 의도했던 바를 설명하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는 노래에 등장하는 화자는 현실의 자신이 아니며, 남녀 혐오라는 사회문제를 강하게 얘기하기 위해 선택한 주제라면서 가사를 일일이 해석했다. 그의 해명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갈등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노래를 썼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1990년 미국 서부 출신의 래퍼들이 모여 ‘위 아 올 인 더 새임 갱(We're All in the Same Gang)’을 발표했을 때와 유사하다. 래퍼들은 흑인들끼리 싸우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이 노래에 참여한 다수는 폭력과 범죄를 미화하는 갱스터랩을 만들던 뮤지션이었다. 그런 이들이 갑자기 평화를 외치니 그 효과가 신통할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일회성 활동’을 마감한 뒤 범죄를 부추길 소지가 있는 노래들을 냈다. 이들의 활동은 89년 미국 동부 래퍼들이 흑인 간의 폭력을 멈춰야 한다면서 부른 ‘셀프 디스트럭션(Self-Destruction)’의 모방에 불과했다. 진심이 부족한 경쟁적 이벤트였을 뿐이다.
산이는 SNS에 올린 해명 글에서 이성적인 남녀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썼다. 이 말은 ‘페미니스트’의 화자와 달리 실제 본인은 여성을 소중히 대한다는 변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진술이 무색할 만큼 산이는 그동안 여성을 업신여기는 ‘비치(bitch)’ 같은 욕설을 내뱉곤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의미의 강도가 순해지고 남자한테도 흔히 쓰는 표현이 됐다고 해도 여성을 존중하는 생각을 품어 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입에 담진 않았을 단어다. 산이의 언어 습관은 본인의 주장과 괴리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고 고매한 뜻이 있다고 해도 평소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신실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그저 시류에 편승해 눈길을 끌려는 얕은 술수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정치사회적인 쟁점, 어떤 유행에 편승하는 산이의 저열한 관심 끌기 쇼는 언젠가 또 이어질 것이다. 예컨대 지난 22일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페미니스트 & 6.9㎝ 댓글 리액션’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영상이 이 같은 예견에 힘을 실어 준다. 산이는 이 영상에서 댓글이 많이 달린 것을 자랑하며 연신 키득거린다. 애초에 깊은 고민이나 철학은 없었던 것 같다.
<음악평론가>
‘여혐’ 노래로 논란 키우고 연신 키득거린 래퍼 산이
입력 2018-11-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