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도제학교’ 3학년생 A양은 자신을 비웃는 소리가 생각날 때마다 너무 분하다고 토로했다. 프랜차이즈 외식업체 매장에서 함께 일하는 매니저 ‘오빠’와 정직원들은 A양에게 잔무(殘務)를 시키며 “이거 다 하고 가. 어차피 너넨 공짜잖아”라며 실실 웃었다. A양이 지난해 5월부터 했던 일은 잔반 비우기(일명 ‘짬빼기’), 홀·냉장고 청소, 창고 정리였다. A양이 하던 일은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국가가 교육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내세운 ‘현장실습’이었다. 현장실습 기간 배운 것은 과일 음료인 에이드 만드는 일뿐이었다고 털어놓은 A양은 “동네 편의점 알바가 낫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만두려 고민도 했지만 고3 1년을 다시 다녀야 할 수도 있다는 교사의 말에 포기했다. 몸이 아파도 자칫 불이익을 받을까봐 쉬지도 못했다. A양은 대학등록금을 마련해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그 꿈마저 잃게 생겼다. 도제학교 학생이 4년제 대학에 가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특성화고 특별전형 원서를 쓰려면 교사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담당 교사는 “(업체에 취업 안하고) 대학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가라. 추천서는 못 써준다”고 말했다.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시스템이 학생들의 노동력만 착취하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기업이 제대로 된 프로그램 없이 학생들을 받아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만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현장에서 전문성을 기르기는커녕 몇 년간 강제로 ‘노예’ 취급만 당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도제학교는 기존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대안 격으로 시행 중이다. 박근혜정부 당시 스위스·독일의 산업현장중심 도제교육을 국내 학교중심 직업교육에 접목한다는 취지로 도입돼 2015년부터 시행됐다. 학교 전체가 도제학교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특성화고 내에서 몇 개의 전공반 형태로 운영된다. 단기간 현장실습을 나가는 기존 과정과 달리 2학년 1학기부터 기업에 채용돼 임금을 받는다. 지난해 11월 제주도 일반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은 여파로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이 사라진 뒤 도제학교는 사실상의 대안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현장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학생들은 특히 적성과 맞지 않거나 업체 노동조건이 형편없어도 성적 처리 문제 때문에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환경에 불만이 쌓여있었다. 다른 수도권 도제학교의 B군은 현장실습 설명회 때 전자분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지원을 결심했다. 그러나 막상 업체에 가보니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정작 배정 업체엔 해당이 안 되는 얘기였다. B군은 1년반째 박스 접기나 쌓기, 단순 드릴 작업 말고는 다른 일을 해보지 못했다. B군은 “시찰을 온 산업인력공단 직원에게 용기를 내 민원을 제기했는데 이후 회사 소속인 도제전담교사로부터 ‘너네 자르면 졸업 못하는 건 아느냐’는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학교 선생님께 얘길 해도 “학교는 책임을 못 진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도제학교 교사에게 업체 주선의 책임을 묻는 구조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가 직접 업체와 학생들을 연결시켜준 만큼 학생들의 이탈을 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제학교는 예산도 따로 주어져 사고의 책임도 일반 특성화고보다 더 크다. 지난해 9월에는 강원도 태백의 한 도제학교 교사가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도제학교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업체와의 연계를 전담하는 담당 취업지원관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업체를 주선해줄 정도 경력의 사람이 기간제 저임금 대우를 감수하겠느냐”라며 “취업지원관 인원과 전문성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ey Word -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독일·스위스의 중등단계 직업교육 방식인 도제식 교육훈련(Dual System)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도입한 제도. 고교 2학년부터 학생이 기업과 학교를 오가며 교육훈련을 받는 현장중심 직업교육훈련 모델.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각 지방 교육청이 함께 주관하고 있다. 이외 경기도 교육청이 ‘경기도식 도제학교’를 별도로 시행 중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기술전수커녕… 노동 착취에 우는 도제학교생들
입력 2018-11-2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