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7년 동안 사람의 몸을 연구하고 만지고 고치는 일을 해 왔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살아오면서 인간의 몸을 남들보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몸이란 살아 움직이는 건축물’이라는 것이었다. 몸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건축물이었다. 세포 하나로부터 시작된 작은 생명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걷는 몸이 되기까지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은 놀라운 신비 그 자체였다.
영혼과 육체 둘 중 하나를 선택?
신앙생활을 할 때 고민에 빠지는 두 개의 전제가 있다. 하나는 영혼은 선한 것이고 몸은 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예배를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몸은 썩을 육체라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육적인 것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육체를 비롯해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교회에 다니면서 영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육적인 만족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많이 보인다.
주변 사람들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 사이에서 부끄러워하며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몸과 영혼은 서로 만날 수 없는, 대치되는 것일까.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을 구분해 둘 중 하나를 취사선택해야 하는 문제일까.
영과 육, 아름다운 화음의 이중창
나는 모태신앙인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을 중학생 때 했다. 그 시절을 기점으로 내 안에도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의 틀이 생겼다. 의학의 길에 접어들면서 그와 같은 분리적인 사고방식은 내게 명확한 모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연 몸과 마음은 다른 것인가. 육체와 영혼은 대립되는 것인가.’ 그 물음을 품고 37년간 의학도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분명하게 찾은 확신이 있다. 그것은 몸과 마음, 영혼은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분리된 개체들이 아니라, 그 원리를 알고 나면 너무도 신비롭고 조화로운 관계라는 것이다.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몸과 영혼이 귀를 잡아 뜯는 불협화음의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화음을 흘려주는 이중창의 소리라는 것이다.
인체는 신비를 담은 유기체적 건축물
정형외과 의사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몸은 신비를 담고 있는 유기체적 건축물과 같다. 신체의 중심에 기둥 같은 척추가 세워져 있고 그 척추는 체중의 10배를 감당할 수 있는 골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척추를 중심으로 체중의 12분의 1정도 되는 머리가 얹혀 있고 좌우 어깨를 시작으로 두 팔이 펼쳐져 있다.
척추와 연결된 갈비뼈 24개는 우리 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심장과 폐, 그리고 간을 감싸 보호하고 있다. 자유롭게 팽창하고 수축해야 하는 위장과 소장, 대장은 뼈 없는 복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생명을 산출해 내는 방광과 생식기, 자궁은 골반이라는 그릇 안에 소중하게 담겨져 있다. 여기까지만 이뤄져도 우리의 몸은 완벽한 생명 그 자체다. 이 상태만으로도 살 수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완벽한 생명이 직립보행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걷고 뛰고 점프까지 할 수 있는 형태를 인간의 몸은 갖고 있다.
100조개 세포 연결해 붙인 하나님 성전
인간의 몸은 세포 하나로 시작해 100조개의 세포를 연결해 붙인 건축과 같다. 건축이란 존재를 담기 위해 공간을 만드는 행위다. 인간은 100조개의 세포라는 벽돌로 이뤄져 있다. 그 벽돌들이 막을 만들고 공간을 만들어 내부의 장기들을 만들어 내고 유기체로 연결돼 몸이라고 하는 전체의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 어떤 존재를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 그것이 인간의 몸이다.
성경에서 인간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즉 집이라고 표현하는 게 상징적인 표현일 뿐일까. 성경에선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세 개의 판을 이야기한다. 출애굽기에선 돌판에 말씀을 새겼다고 하셨다. 예레미야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새기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요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겠다고 하셨다. 인간의 몸은 말씀이 새겨지는 완성판임을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유기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을 새기는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까지 한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서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예배의 완성으로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 12:1)고까지 말씀하시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성경의 위와 같은 진술들은 정형외과 의사인 내게 육과 영혼의 이분 도식을 풀어내는 열쇠가 됐다. 나는 확신한다. 인간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진술하는 성경의 말씀은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있는 곳’이다. 물론 문자로 기록된 말씀은 성경이다. 하지만 그 문자가 우리 몸에 신비로 기록돼 있다.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몸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몸의 크기와 형태와 색깔이 다르며 갖고 있는 장단점과 능력에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피조물들이 가진 몸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증거한다. 우리의 몸 안에 신비로 기록된 그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이 신앙이요 인간의 근원적 행복이다.
몸 안에 기록된 신비 속 진리를 보라
우리는 마음에 끌려 산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마음이라고 하는 영원한 트렌드에 묶여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이란 하나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게 마음이고 한순간에도 수십 갈래로 갈라지고 마는 게 마음이다.
우리의 인생은 마음의 인생인가. 마음 따라 가는 인생은 어디로 갈까. 마음은 주소지가 없다. 그래서 찾아갈 수 없다. 몸 안에 있어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때로는 내 몸을 떠나 어디론가 홀로 돌아다니곤 한다.
그러나 몸은 어떨까. 몸은 솔직하다. 여기에 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직접 느낄 수 있다. 내가 집에 가면 몸도 집에 간다. 마음은 외출해서 혼자 돌아다녀도 이 몸은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있다.
몸은 모호하지도 형이상학적이지도 않다. 분명하고 구체적이며 지금 여기에 눈에 보이도록 존재한다. 우린 무엇을 보아야 할까. 진리를 찾는 구도자라면 어디에 주목해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신앙인이라면 무엇에 집중하는 게 지혜로울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우리의 정직한 몸 안에 기록된 신비를 읽어가고 알아간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보게 될 것이다.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 건강 지식- 생명 설계도 DNA
하나의 체세포 안에는 23개 염색체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그 염색체는 DNA라고 하는 책을 갖고 있으며 그 책 안에 몸의 운명을 담고 있는 유전자 정보가 쓰여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인간 지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23개 염색체의 암호를 다 풀어냈다. 그 결과 염색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특징과 성격이 무엇인지, 각 염색체에 문제가 생길 때 어떤 질병에 걸리는지 알게 됐다. 사람의 성과 질병, 수명까지 예측하게 됐다.
과학 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생명 설계도, 지놈’이란 책에서 인간의 23개 염색체를 인류가 겪어온 중요한 사건을 기록한 인간의 자서전이라고까지 소개한다. 공교롭게도 우리 몸의 23개 염색체 수와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23개 문자 수(원래는 22개이지만 ‘신’과 ‘쉰’으로 나뉘어져 23개)가 일치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되게 하시는 복음을 가르쳐 주셨다. 때로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 말씀하셨고 요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며 그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고 했으며 창세기에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은 창조된 우리 몸 안의 23개 염색체와 그 안의 DNA라는 문자를 통해 인간에게 바라시는 마음을 명령으로 새겨놓으셨다. 그리고 거기엔 성경 문자와 같이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완성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이 담겨 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이창우 박사의 바디 바이블] 몸과 영혼, 조화롭고 오묘한 진리 담긴 ‘하나님의 성전’
입력 2018-11-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