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서민 지갑을 옥죄며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쌀 한 가마니(80㎏)당 도매가격이 19만원을 넘어선 뒤 떨어질 줄 모른다. 소비자가격은 최고 24만원까지 치솟았다. 햅쌀이 나왔는데도 되레 쌀값이 고공비행하는 비밀은 뭘까.
쌀값의 ‘열쇠’는 대형 농가들이 쥐고 있다. 이들은 쌀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햅쌀을 팔지 않고 쌓아둔다. 공급이 달리면서 가격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이면에는 ‘쌀 목표가격 결정’ ‘농협 조합장 선거’라는 정치적 이슈가 도사리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5일 조사한 산지 쌀값은 한 가마니에 19만3684원이다. 1년 전(15만3124원)보다 4만원 이상 올랐다. 불과 한 달여 전인 9월(17만8321원)과 비교해도 1만5000원가량 뛴 가격이다. 유통 과정을 거친 소매가격은 더 높게 형성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22일 기준으로 쌀 소매가격은 한 가마니에 평균 21만4472원이다. 최저가는 20만4000원, 최고가는 24만원에 이른다.
보통 햅쌀이 시중에 풀리는 10∼12월이면 쌀값은 떨어진다. 그런데 올해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일단 폭염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9만7000t 줄었다. 다만 생산량 하락이 쌀값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농가에서 햅쌀을 팔지 않고 비축하는 게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대형 농가 위주로 쌀을 내놓지 않으면서 물량 부족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농가들이 쌀을 팔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쌀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내년 3월 치러지는 농협 조합장 선거가 ‘버팀목’이다. 농민에게 잘 보여야 할 조합장 후보자들이 더 좋은 가격에 쌀을 구매해 줄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정부가 5년마다 정하는 쌀 목표가격이 올해 결정된다는 점도 ‘대형 농가의 버티기’에 영향을 미친다. 쌀 목표가격은 농민에게 지급하는 직불금을 산정하는 잣대다. 농업계는 최소한 현재 시가보다 높은 목표가격이 정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쌀 목표가격은 당정협의를 거쳐 19만4000원으로 정해졌지만 여야 협의 과정을 남겨놓고 있다. 야당 몫이 얼마나 반영되느냐에 따라 목표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있다.
문제는 쌀값 상승이 소비자물가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쌀은 물가상승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휘발유, 경유에 이어 3위다. 쌀값이 오르면 외식업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외식업체는 가격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대응에 나섰지만 쌀값이 안정세를 찾을지 미지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정부 비축미 5만t을 내놓고 공개 입찰에 들어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다음 달 7일쯤이면 비축미 판매가 완료돼 쌀값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한 달 만에 1만5000원 뛴 쌀값, 폭등 원인은 “더 오를 것” 기대감
입력 2018-11-2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