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인웅 (22) 수도회서 ‘일관정’ 매입… 사랑받는 공간 변모

입력 2018-11-23 00:00 수정 2018-11-23 09:08
덕수교회 끝자락에 있는 일관정 전경. 이 집은 1986년부터 2000년까지 손인웅 목사가 사택으로 사용하다 보수공사 후 영성훈련원으로 탈바꿈했다.

덕수교회는 우리교회 김한근 장로가 설계하셨다. 정동 예배당의 이미지를 잘 살려낸 명작이었다. 김 장로는 덕수교회를 설계한 뒤 전국의 20여 교회를 설계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고 훗날 한국건축가협회 회장도 지내셨다.

그래서인지 새 교회는 더욱 각별했다. 어느 날부터 교회와 담장을 맞대고 있는 오래된 한옥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동네 어른들을 만나 누구 소유의 집인지 넌지시 여쭤봤다. 그랬더니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유라고 하는 게 아닌가. 교회 건너편에 지금도 있는 복자수도원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길로 찾아가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수도원 건너편에 있는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라고 합니다. 저희 교회 끝에 있는 한옥에 관심이 많습니다. 혹시 파실 수 있으신지요.”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의외로 쉽게 답이 돌아왔다. “저희도 관리가 어려워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1986년의 일이었다.

교회는 한옥 누마루에 붙어있던 ‘일관정’(一觀亭)을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 집의 정식 명칭은 ‘성북동 이종석 별장’(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0호)으로 1900년대 초반 집을 지었던 이종석의 이름을 땄다. 이분은 보인학교를 설립하신 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 집은 소설가 이태준, 시인 정지용 이은상, 수필가 이효석 등이 문학 작품 활동을 했던 유서 깊은 공간이었다.

교회는 이 집을 사택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셨다. 이곳에서 우리네 식구는 17년을 살았다. 하지만 애초에 여름별장으로 지어진 집이다보니 조금만 쌀쌀해져도 냉골이 됐다. 난방은 되지 않았다. 겨울에 너무 추워 온 가족이 교회로 뛰어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오래된 집이다보니 벌레도 많았고 천장에선 쥐가 뛰어 다녔다. 따로 사택을 마련하기에는 교회 재정이 넉넉하질 않았다. 물론 살다보니 점점 정겨워졌다.

이 집에선 2000년까지 살았다. 2003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이듬해 추수감사주일에 재개관했다. 보수공사 후 모두가 사랑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나던 손님들도 많이 찾아 한참 동안 앉았다 가곤 한다. 교회는 이곳을 영성훈련원으로 사용한다. 교회학교 학생들은 한옥체험도 한다. 덕수유치원 원생들은 이곳에서 다도(茶道)를 배운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리면 이곳이 폐백실로 사용된다. 덕분에 전국에 소문이 났다.

일관정과 관련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 1987년 교회 정명훈 집사님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열며 날 초대했다. 그때 아들 조훈을 데리고 갔다. 연주회 전 우연히 주변을 둘러보니 뒤편에 김수환 추기경이 혼자 앉아 계셨다.

“조훈아, 저기 김 추기경과 자리를 바꿔주겠니. 가서 이 자리로 모셔라.” 그래서 김 추기경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했다. “추기경님,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라고 합니다.”



그러자 바로 “아니, 여기서 만나네요. 사실 새 교회 부지 전체를 매입해 복자수도원과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한 번 만나려 했습니다. 혹시 저희에게 다시….”

추기경님도 아쉬운 마음에 하신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날 연주회 중간 중간 추기경님과 일관정을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 덕분인지 교회는 이웃한 길상사나 복자수도원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일관정이 그 중심이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