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주주행동주의 펀드’ 바람이 거세다. 행동주의 펀드 KCGI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 9%를 취득하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재벌을 상대로 한 한국형 주주행동주의의 서막이 올랐다”고 본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을 압박해 배당 확대 등에 나서면 주주 이득이 커질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다만 재계에서는 경영권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어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는 530개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치다. 2010년 9월 말 130개였는데 4배 이상 늘었다. 출자가 약속된 자금은 69조원에 달한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적극적 행동에 나서면 행동주의 펀드로 분류할 수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에 단순 투자하는 걸 넘어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을 적극 요구한다. 소액주주들에게는 일종의 ‘목소리 큰 아군’인 셈이다.
사모펀드가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하려면 경영참여형으로 등록해야 한다. 현재 국내 사모펀드는 전문투자형(헤지펀드)과 경영참여형으로 나뉘어 있다.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기업 지분을 처음 취득한 후 6개월 안에 10% 이상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규제(10% 룰)를 받는다. 그런데 한국형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대부분 소규모다. 덩치가 큰 재벌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이런 규제를 없애는 내용의 사모펀드 개선 방안을 발표했었다.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의 경계를 지우고 ‘10% 룰’도 없앤다. 사모펀드들이 소규모 지분으로도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현대차 지분을 3%만 보유하고도 현대차에 자사주 소각 등을 압박했다. 한국형 사모펀드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KCGI는 지난 15일 한진칼 지분 9%를 갖고 있다고 공시했다. 아직 10% 룰 규제가 풀리지 않아 우선 9%를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 KCGI는 경영권 장악 의도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시장에선 향후 의결권 대결에 나서는 등 경영에 본격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NH투자증권 김동양 연구원은 “주주행동주의의 본격화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송치호 연구원은 “한진칼은 그동안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 등의 여파로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행동주의 투자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 ‘강풍’
입력 2018-11-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