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의 대기업 공시 위반 전수조사, ‘기업 옥죄기’ 논란

입력 2018-11-22 04:00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초로 대기업의 공시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전수 점검에 착수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 없이 ‘조사’의 영역에 포함되는 자료까지 요구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최근 검찰이 공정위의 기업조사 자료를 무작위로 압수해 가면서 임의제출 형식을 띠는 공정위 현장점검을 두고 기업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21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6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60개 대기업집단 소속의 2083개 회사를 대상으로 공시의무 이행 점검을 위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해까지는 전수조사가 아닌 부작위 선정이라 점검 대상이 300여곳에 불과했다. 1년 새 10배 가까이 점검 대상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내부거래 공시점검과 무관한 비계열사 회사의 거래내역·금액도 기재토록 하는 등 방대한 내용의 자료를 요구했다. 또 공정위는 현행법상 점검 위반 시 시정조치나 과태료 처분밖에 되지 않는데도 공문에 허위제출 시 형사제재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공정위가 정당한 조사권도 없이 기업 옥죄기를 한다고 지적한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공시 점검은 조사가 아닌 협조요청에 따른 점검표 제출로 형사제재 대상이 아니다. 공정위가 법적 근거도 없이 기업을 겁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내부거래 실태조사를 법적 근거 없이 실시했다는 지적을 받자 공정위가 이를 피하기 위해 공시 점검을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다 자료 임의제출을 놓고 공정위와 기업이 갈등도 빚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월 공정위를 압수수색해 하이트진로 총수 일가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조사 자료 일체를 확보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 조사를 받았을 뿐인데 검찰 조사로 이어진 것이다. 이전에도 검찰이 공정위 조사 자료를 가지고 간 적은 있다. 다만 이번 압수수색은 공정위와 사전 협의도 없이 이뤄졌다.

이 일이 있은 뒤로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나가 자료를 요청할 때 임의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속고발권도 없어진다고 하는 마당에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가 언제 검찰에서 활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면서 “대형 법무법인에서도 임의제출은 거부해도 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기업이 정당하게 임의제출을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면서 “이럴 경우 조사방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지만 큰 기업일수록 약발이 안 먹히고 있다”고 털어놨다.

공정위의 무리한 조사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점검 항목이 매번 달라지는 등 혼란을 가중시키는 공시 점검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가 법에 점검항목을 자세히 명시하고 공시 점검 명목으로 확보한 자료를 다른 조사에 활용하거나 법 위반 증거자료로 활용하지 않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전성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