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과거사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정권 차원 지시 있었다”

입력 2018-11-21 18:51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 상고심을 거쳐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씨가 서울중앙지법에 지난 2016년 11월10일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노태우 정권 차원의 위법한 지시에 따라 당시 검찰 수뇌부가 조작한 것이라는 공식조사 결과가 나왔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지난 12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강기훈씨에 대한 검찰총장 사과 등을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사건은 1991년 당시 명지대 학생 강경대씨가 시위 중 경찰 구타로 사망한 사건 등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노태우 정권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던 시절 일어났다. 당시 단국대 학생이었던 강기훈씨는 그해 5월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한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썼다. 강씨는 1992년 징역 3년형이 확정됐으나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으로 재심을 거쳐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과거사위는 당시 ‘노태우 청와대’가 치안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검찰에 ‘분신 배후세력을 물색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준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사건 발생 직후 1∼2일 사이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전원이 동원돼 수사 방향을 유서대필로 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김기춘, 검찰총장은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었던 정구영이었다.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이후 서울고검장·대법관을 역임했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당시 수사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당시 수사팀은 문제의 유서와 김씨의 필적 동일 여부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가 오기도 전에 강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김씨의 필적자료 중 정자체 외에 흘림체를 사용한 것도 발견했지만 아무런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수사보고하고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당시 검찰이 불리한 증거를 은폐하는 등 객관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과거사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무일 검찰총장이 강씨에게 직접 검찰의 과오를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위법수사로 인한 재심사건에서 무조건 불복하는 관행을 멈추고 재심절차에 대한 검찰권 행사 준칙 등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