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금융위기 수준으로 재정 지출하지만, 국민은 지갑 닫았다

입력 2018-11-22 04:00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스마트폰 등 내구재 판매액이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정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한 나라의 총 소비를 구성하는 두 주체인 정부와 민간의 씀씀이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데도 민간 체감경기가 얼어붙는 이면에는 이런 ‘소비의 두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내구재 판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9.4% 감소했다. 금융위기였던 2009년 4월(-10.8%)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내구재는 최소 1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 승용차·통신기기·가구·오락·취미용품 등을 말한다. 처음 구매할 때 목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이 여유가 있을 때 사는 물건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따라서 내구재 판매액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지갑을 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 물품을 보면 승용차 판매액이 1년 사이 16.3% 감소했다. 2010년 6월(-16.6%) 이후 가장 많이 줄었다. 통신기기 및 컴퓨터 판매액 감소폭도 약 4년 만에 가장 컸다.

민간 소비자들이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과 달리 정부 소비인 예산 규모는 내년에 470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9.7% 늘어날 전망이다. 증가폭이 2009년(10.6%) 이후 최대다. 가라앉는 경기를 재정지출로 끌어올리려고 씀씀이를 키우는 것이다. 정부는 과감한 재정지출이 올해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0.5%포인트 견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대적인 소비가 꽁꽁 얼어버린 체감경기를 녹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3.3%인 총 소비증가율이 내년에 3.5%가 될 것으로 추산했지만, 이 가운데 민간 소비증가율(2.8%→2.4%)은 뒷걸음질을 친다고 진단했다. 정부 소비는 계속 늘지만 민간 소비는 줄어드는 흐름을 보인다는 관측이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