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죽전대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 세 자매가 다닌다. 첫째 이미령(55)씨와 둘째 정아(53)씨는 놀이치료교육학 박사 과정 중이다. 놀이치료 1호 박사이다. 막내 지애(49)씨는 상담심리학과 석사 과정, 미령씨의 남편 홍진표(55)씨는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에 있다. 네 가족이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힐링’ 때문이었다. 교회용어사전에 따르면 힐링은 ‘몸과 마음(영혼)의 치유와 회복’이라고 정의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이 학교에 발을 들인 미령씨는 “그동안 무의식중에 있던 분노와 상처의 원인을 알았고 치유작업을 거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미령씨의 변화 모습을 지켜본 남편과 동생들은 내면치유의 힘을 보고 함께 배우겠다고 나섰다. 지난 19일 이 학교에서 세 자매와 홍씨, 박은정 상담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엄마 부재에서 시작된 상처
세 자매의 상처는 ‘엄마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세 자매가 7세, 5세, 출생 후 100일 즈음에 어머니는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여성은 출산 직후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를 경험한다. 산후우울증이 심각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나간 동안, 세 자매는 할아버지와 고모 손에 맡겨졌다.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한 이들은 늘 외로웠다. 미령씨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됐을 때 아버지는 재혼했는데 새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새어머니로부터 받은 구박과 미움은 자신을 위축시켰다.
미령씨는 “세 자매는 서로 의존성이 높지만, 부모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성장해 내면이 건강하지 못했다”며 “분노가 각자의 기질에 따라 다르게 표출됐다. 저는 과격한 분노로, 둘째 동생은 불신, 막내는 다른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성장했다”고 털어놨다.
미령씨는 결혼 후 남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투사했다. 분노가 생기면 남편을 몰아붙이고 심한 말로 상처를 줬다. 기물을 파손할 정도로 분노조절이 안 됐다. 디스플레이디자이너로 성공대로를 달리던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거리가 많은 저를 발견했어요. 하지만 내면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어 ‘난 왜 이럴까’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했죠.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고 그저 하나님 앞에만 있었어요. 뒤돌아보면 뿌리 깊은 상처의 치유를 경험하지 못해 그랬던 것 같아요.”
지난해 웨신대 상담심리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이 길이 맞구나’ 깨달았다. 미령씨는 “자신이 그동안 찾아 헤매던 자물통과 열쇠를 찾았다”고 했다. ‘가족치료’ 등의 수업을 받으며 우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지는 과정 중에 있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새어머니를 용서하는 훈련을 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는 훈련도 하고 있다. 1년 공부하다 예술가 기질이 있는 자신이 놀이치료에 더 잘 맞을 것 같아 올해 봄부터 놀이치료교육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상처 회복되니 주변인과의 관계도 회복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자, 시한폭탄처럼 언제든지 터질 것 같았던 분노가 잦아들었고 마음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찾았다. 동생들과의 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전엔 동생들과 싸우면서도 의존성이 강했는데 회복된 뒤에는 가정에 더 충실해졌다.
미령씨 남편 홍씨는 “아내 마음에 있던 분노의 자리에 온유와 절제가 자리 잡았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분노의 뿌리를 안 것 같다”고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정아씨는 언니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지난해 병석에서 있던 친정아버지를 보면서 과거의 시간을 되돌아봤는데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감사한 점도 많았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울리고 싶었다.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방황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언니처럼 공부하면서 우는 일이 많았다. 무의식중에 있던 자신의 깊은 내면을 직면해야만 했다. 정아씨는 “공부하고 내면의 힘이 생겼다. 성격이 밝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막내 지애씨는 제주도에서 10년간 거주하다 공부를 위해 이사까지 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그는 “언니들이 날카로웠는데 공부 후 차분해지고 내면의 힘이 생긴 걸 지켜봤다. 단순히 지식만 얻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제주도 생활을 접었다”고 밝혔다.
지애씨도 상담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2008년 제주열방대학 가정상담사역학교에 참여했던 그는 상담심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언니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다들 놀라고 부러워 한다.
함께 공부하면서 회복을 경험한 이들은 이전보다 돈독해졌다. 지애씨는 “자매간에 좋은 것은 공유하고 돕지만, 선의의 경쟁도 하는 사이”라면서 “언니들과 상담공부를 하고 형부는 사회복지를 공부하시니 든든하다. 이전엔 언니들과 연예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요즘 상담학 지식을 나누는 발전적인 사이가 됐다”고 했다.
다른 사람 새롭게 해주는 통로 되고파
네 명의 가족은 공부를 마친 뒤 미령씨가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운영했던 협동조합 ‘기쁨발전소’를 다시 운영할 계획이다. 기쁨발전소는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센터로, 우울증에 빠진 주부들에게 활력을 주고 부모의 돌봄이 미치지 못하는 아동을 위한 치유사역에 나설 예정이다. 미령씨는 “하나님이 저를 회복시켜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새롭게 해주는 통로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교수는 “세 자매분의 에너지가 굉장하다.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대된다”며 “내면치유는 상처로 갈라진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들어 말씀이 온전히 뿌리내리게 해준다. 우리도 인생을 돌아보며 내면이 어떤 그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용인=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상처 입은 마음 공부로 치유… ‘웨신大 세 자매’
입력 2018-11-23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