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실 일, 우린 힘들지 않아요”

입력 2018-11-23 18:33
아현성결교회 권사들이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이 교회 식당주방에서 점심배식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경순 한순임 송광순 김순자 권사. 강민석 선임기자
아현성결교회 한 청년이 식당봉사팀으로부터 밥과 반찬을 건네받으며 환히 미소 짓고 있다.
설거지를 돕는 여전도회 회원들.
교인들에게 제공한 밥과 반찬.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아현성결교회 이경순(68·여) 권사는 교인들에게 ‘대장’으로 불린다. 교회 식당봉사팀에서 가장 많이, 오랫동안 봉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30년 째 교회식당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분홍색 앞치마를 착용하며 “주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쌀을 씻고 밥을 지으며 교인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반찬 식재료를 전날 전화로 주문해 배달시키고 직접 만든다. 그는 “저처럼 교회식당에서 봉사하는 여 권사, 여 집사님들이 많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환히 웃었다.

이날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이 권사의 손길은 분주했다. 하얀 쌀밥에 우거지콩나물국, 멸치와 콩나물 무침·김 반찬, 그리고 과일까지. 교인들에게 배식한 밥상목록이다.

“교회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니 밥이 더 맛있어요. 이른 아침부터 저희들 밥 챙겨 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이 교회 청년 한명이 점심을 먹은 뒤 한 말이다.

이 권사가 이렇게 식당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쉬는 시간에 그를 만나 질문을 건네자, 이 권사는 “받은 은혜가 많아서”라는 대답을 했다.

“원래 절에 다녔어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교회에 나갔지요. 그런데 예배에 참석해 목사님말씀을 들으니 점점 행복해지는 거예요. 매주 주일예배와 수요저녁예배, 매일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교회가 좋았어요. 당연히 교회봉사도 열심히 하게 됐죠.”

그는 식당봉사에 대해 ‘부엌사명’이라고 표현했다. 많이 배우지 못해 딴 재주는 없고 밥하는 재주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음식솜씨가 좋은 새댁으로 소문나 한때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교인들이 제가 지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고 절로 배부르다. 식당봉사 일이 얼마나 기쁨을 주는 지 봉사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당봉사를 하면서 남편사업이 번창했고 자녀들도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 주었다. 건강도 지켜주셨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많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힘들 때도 있었다. 근거 없는 험담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부엌데기’라며 무시당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태복음 7장 12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되새겼다. 이 권사는 말씀에 따라 살길 원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길 즐겨했다.

“하루는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가 제게 ‘할머니는 왜 맨날 부엌에서만 일해?’라고 묻더군요. 같이 놀아 달라고 그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었죠. ‘할머니가 식당에서 일해야 교인들이 맛있게 밥 먹고 편히 예배드릴 수 있는 거야”라고 말이죠.(호호)”

교회는 한 주는 밥, 한 주는 국수를 제공한다. ‘정성껏 위생적으로 음식을 만들자’는 게 식당봉사팀의 모토이다. 콩나물 반찬 하나도 신선한 식재료를 쓴다. 여전도회 회원들이 설거지 등으로 주방 일을 돕는다. 식사 후 청소는 남전도회 회원들의 몫이다. 교회에 손님이 오실 때도 식사, 다과 등을 준비한다.

여성들만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탐탁잖게 여기는 교인도 있었다. 한 20대 여성 교인은 “한국교회에서는 아직 여성 교인들이 교회주방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성들도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진정한 남녀평등 세상이 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앞으로 결혼하면 제가 돈을 벌고 남편이 가정주부를 하겠다고 하면 합의를 해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교회는 무료식사 제공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무료 의견이 우세했다. 이 교회 재정위원장 양동수 장로는 “식사비 내는 것에 찬성표를 던졌다. 교회재정 상황을 떠나 조금씩 식사비를 내면 소속감도 생기고 ‘구제사역에 보탬이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회 식당봉사 담당부서인 복지위원장 임승우 장로는 나이 든 분들이 식당봉사를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젊은이들도 식당봉사를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회마다 식당봉사팀이 있다. 그런데 자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3D사역이기 때문이다. 3D는 영어 dirty(불결하고) difficult(어렵고) dangerous(위험한)의 앞 글자를 딴 말이다. 원래 제조업, 광업, 건축업 등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분야의 산업을 일컫는 데서 비롯됐다.

3D사역이란 교회 안에서 가장 낮은 자리일 것이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정하듯 참여를 권면해도 할까 말까 하는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식당봉사를 유급직원으로 채용하는 교회도 늘고 있다.

성경은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는 말씀으로 교회 내 3D사역을 권면하고 있다. 바울의 교회론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엡 4:12) 우리는 그 몸의 지체다(고전 12:27). 다시 말하면 교회를 섬기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과 그의 몸을 섬기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회 내 3D사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이라고 조언했다.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은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순번을 정해 식당봉사를 하는 교회문화를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봉사와 교제의 기쁨을 맞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한경 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은 “자신의 얼굴이 회중 앞에 드러나는 인기사역에는 교인들이 모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역엔 봉사자가 드물다. 교회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또 “초대교회에서 성찬은 교회의 식사자리에서 행해졌다. 육체를 위한 양식의 영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식탁 봉사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