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하나인데 덧붙일 말이 참 많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베테랑 카피라이터지만 10년 넘게 생활만화를 그렸다. 에세이도 두 권이나 출간했다. 지난 10월에는 갑자기 ‘문학과 사상’ 표지에 등장했다.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돼 등단 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홍인혜(36)씨의 이력은 더 이상 평범치 않다. 냉철한 현실감각을 유지하면서도 꾸준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다. 그의 ‘성실한 발버둥’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2030세대에게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덕질불패’라고 정의했어요. 직장생활 외에 제가 했던 모든 일이 말하자면 ‘덕질’이었던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린 것도, 시를 쓴 것도 너무 좋아서 홀딱 빠져서 했거든요.”
어느덧 15년차 카피라이터가 된 홍씨는 인터넷 공간에서 ‘루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스물네 살이었던 2006년, 개인 홈페이지 ‘루나파크’를 열고 생활툰(일상을 소재로 한 만화)을 연재하며 만든 닉네임이다. 3년차 직장인이었던 ‘루나’는 회사에서 꺼내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냈다. 톡톡 튀는 표현과 귀여운 그림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소재가 입소문을 타면서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탄탄한 독자층이 생겨났다.
루나파크를 만든 건 순수창작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클라이언트가 있고 팀이 있는 광고회사에선 온전한 ‘나만의 창작물’은 없었다. 홍씨는 “지금도 카피라이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해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결핍감을 느꼈다”고 했다.
바쁘고 고된 하루의 틈을 비집고 만화를 그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마른 걸레를 쥐어짜듯 시간을 ‘짜냈다’. 그는 “소재를 미리 생각해두고 퇴근하면 책상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달음질쳐서 그림을 그렸다”며 “그래도 하루하루 홈페이지 방문자가 늘어나는 게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광고업계는 사원 개인의 창작 활동이 활발한 분야라 홍씨의 ‘가욋일’이 특별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고 했다.
카피라이터의 내공은 만화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말이 주는 뉘앙스를 고려해 단어 하나하나도 세심하게 고른다. 짧은 만화를 그려도 광고업계에서 말하는 ‘인사이트’를 담으려 노력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 부분을 건드리는 걸 ‘인사이트’라고 해요. 광고회사를 다니며 체화된 걸 수도 있는데, 생활만화에도 이런 통찰을 담으려 고민하죠. 내가 봐도 ‘좋은 통찰이었다’ 싶은 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사춘기 직장인’으로서 소통했던 루나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꼭 6년을 채웠던 회사생활을 접고 5개월은 한국에서, 8개월은 영국에서 보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해 쉼 없이 달려오면서 모든 게 소진됐다고 느낀 시기였다.
스스로를 ‘초겁쟁이’ ‘돌다리도 부서질 때까지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홍씨는 “소위 말하는 ‘욜로’처럼 전혀 용감하지도 멋지지 않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퇴사를 마음먹고 사직서를 쓰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익숙한 세계를 내던졌다는 두려움에 회사 근처만 지나가도 심장이 벌벌 떨렸다. 그토록 모든 용기를 끌어모은 모험은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가 됐다.
“복잡하고 치열했던 회사생활을 한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니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느꼈어요. 이 큰 세상에선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지금은 다시 광고업계로 돌아갔지만 그 마음을 늘 한구석에 담고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상업적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던 그가 시인을 꿈꾸게 된 건 영국에 다녀온 후 몇 년 뒤다. 새롭게 자취 공간을 마련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불가사의한 열정이 솟구쳐서” 시 수업을 등록했다. 이전까지 시집 한 권 읽지 않았던 그는 매일 수십개의 짤막한 글을 쓰는 카피라이터가 ‘시인 비슷한 거’라는 착각을 했다고 한다. 홍씨는 “자만심을 갖고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와장창 충격을 받았다. 제가 알던 시는 시가 아니었고, 완전 다른 세계였다”고 말했다.
홍씨를 매료시킨 건 ‘시의 태도’였다. 광고는 모든 글이 쉬워야 하고 빠르게 와 닿아야 하지만 시는 달랐다. 소통을 굳이 원하지 않는 도도함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홍씨는 “회사에서 채울 수 없던 창작욕을 발산하려 만화를 그렸는데, 시는 그 극한에 있었다”고 했다.
첫 수업을 듣고 돌아온 길에 수업에서 거론된 현대 시인들의 시집을 모조리 구입했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읽었다. ‘이 세계를 이해하고 말겠다’는 도전정신도 있었다. 그렇게 시에 흠뻑 빠진 지 5년, ‘시인이 되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이 생겨났다.
“저는 겁도 많고 세상에 순응하는 모범생적 기질도 강해요. 선각자나 모험자 스타일은 전혀 아니죠. 어느 나이에는 뭘 해야 한다는 삶의 루트가 있는데 시를 쓴다거나 하는 결이 다른 욕망들이 자꾸 생겨나니까 ‘나 이래도 되나’ ‘뭔가 잘못돼 가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홍씨 역시 현실과 이상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수차례 공모전에 떨어지면서는 ‘40세까지 등단하지 못하면 1인 출판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번민을 끊어낸 건 뜻밖에도 ‘등단’이라는 두 글자였다. 시인 지망생이 아닌 진짜 시인이 되자 자신을 둘러싼 시선에도 관대해지는 것을 느꼈다. 홍씨는 “이 나이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자격이 생긴 느낌이었다”며 “등단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마음 자세가 달라질 수 있다니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고 했다.
광고와 만화와 시. 각각의 작업은 모두 세상과 소통하며 창작의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직장인, 만화가, 시인의 정체성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홍씨는 하나의 몸에 자리 잡은 서로 다른 자아를 떠올리며 등단작 ‘두두’를 썼다. 낭만적이고 예술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자아, 직장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감내하고 인내하는 가련한 자아를 ‘머리 두 개 달린 사람’으로 표현했다.
홍씨는 “이중인격은 아니지만 정체성에 혼란이 있긴 했다”며 “회사는 감정을 최대한 닫아놓고 다녀야 하는 곳인데 시는 눈물 나기 직전까지 감성적인 상태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 작업을 위해서도 다른 자아에 ‘로그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는 “퇴근한 다음에는 잠깐 잠을 자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며 회사원인 나와 단절한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서 7, 8시에 퇴근해도 밤 12시가 넘어야 시인으로 로그인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홍씨는 개인 블로그에 등단 소감을 전하며 “모든 감정의 일렁거림 가운데에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성장해가는 ‘루나’를 10년 넘게 지켜본 팬들은 그 자체로 힘을 얻고 자극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홍씨 역시 자신과 함께 나이 먹는 팬들이 동료나 친구처럼 느껴진다. 주말을 반납하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는 것도 ‘동료’들을 만나는 시간이 더 없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홍씨는 앞으로도 카피라이터로 생활하고, 시인으로 존재하며, 만화로 위로를 전할 예정이다. 그는 힘겨운 삶 속에서 누구든 자신만의 ‘루나파크’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겉보기에 인생이 평탄해 보이는 저도 사실은 힘든 부분이 많아요. 그럴수록 나만의 위로되는 걸 찾으려고 매일매일 노력하죠. 제가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사회초년생 때 ‘루나파크’를 만들었듯 각자 자신만의 쉼터를 만들길 바라요. 제 창작물이 그 쉼터에 붙일 수 있는 작은 그림 정도는 될 수 있길, 그게 제 꿈입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회사원·시인·웹툰 작가, 세 개의 자아로 살아가는 법
입력 2018-11-24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