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톺아보기]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입력 2018-11-23 18:19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여러 종족 중 아라파호족은 11월을 특별하게 불렀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시적인 표현이다. 실제 이를 제목으로 한 시가 발표된 일도 있다. 시인 정희성이 2008년 펴낸 ‘돌아다보면 문득’에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소개됐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있네/그대와 함께 한 빛났던 순간/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어느 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있네/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시대의 모순과 사랑의 슬픔을 노래해 온 시인은 이 시에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하지만 시가 담고 있는 함의는 다양하다. 11월이 주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11월은 독자들이 살아 온 인생의 어느 날일 수도 있다. 물론 떠나가는 사랑의 끝자락을 붙잡으려는 절박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마침 시를 발표한 해에 시인은 평생 몸담았던 교직에서 정년 은퇴했다. 이를 두고 보면 시인에게 11월이란 인생 2막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기자의 고등학교 은사이기도 한 시인의 시는 제자들에겐 더욱 각별하다. 마치 스승이 제자에게 전하는 당부나 조언처럼 느껴져서다.

매년 돌아오는 ‘11월’과 인디언들이 불렀다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 하나가 돼 태어난 시가 주는 심상이 이처럼 다채롭다. 사실 세상의 모든 시가 읽는 사람에 따라, 처한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읽혀지기 마련이다.

11월은 한 해의 종착점이 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마무리를 위해 지나 온 시간을 반추할 때라는 말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고 조직교회가 생겨난 100여년 전부터 교회들은 이때가 되면 정책당회를 열어왔다. 지나 온 시간을 점검하고 새해 구상을 위해서였다. 그런 면에서 교회들에 11월은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한 해의 끝에 서서 한국교회가 지나온 흔적들을 돌아본다. 수많은 미담과 복음의 결실 속에서도 유독 교회와 목회자들이 관련됐던 온갖 추문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건 왜일까.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부끄러운 일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역하는 전국 교회들의 빛났던 사역을 가리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인용한 시가 지금의 한국교회에 주는 심상은 여전히 늦지 않았다는 일종의 기회와도 같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면 정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나만 아니면 됐다는 식의 이기주의는 허물을 키울 뿐이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며 얻은 결실들의 총합이다. 그 출발점은 회개였다. 회개는 죄를 고백하는데서 출발한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사라지지 않은 것은 교회가 회개의 공동체란 사실이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