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20만명에 달하던 경남 합천군 인구는 현재 5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젊은 인구는 도시로 빠져나갔고 60대 이상 인구가 절반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합천군은 대표적인 ‘지방 소멸’ 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조용했던 마을도 시끌벅적해지는 기간이 있다. 바로 매년 10월이다. 이 기간에는 출향민들이 합천 황매산을 방문해 ‘고향명산 등반대회’를 개최한다. 1000명이 넘게 참여하는 이 행사는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 고향 땅을 밟으며 가을 산의 정취를 느끼고 향수를 달랜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이 기간이 되면 자발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지역 특산품을 갖고 모여든다. ‘미니 장터’가 열리는 셈이다. 고향 특산품 구매로 지역 경제 살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에 출향민들의 호응도 상당하다.
경남 합천군은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고향희망심기’ 사업 일환으로 ‘향우 자녀 고향여름캠프’ 행사도 운영 중이다. 지난 7월 30일부터 3일간 열린 이 행사에는 29명의 합천 출향민 자녀들이 참가해 대표 관광지인 해인사, 대장경테마파크 등을 둘러봤다. 또 합천을 주제로 ‘OX 게임’에 나서는 등 자연스럽게 부모의 고향에 대한 정보를 익히는 기회도 가졌다.
합천군 관계자는 19일 “고향희망심기 사업을 통해 향후 귀농·귀촌으로 인적자원이 지역에 유입되는 등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며 “출향민 뿐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 고향땅 밟기가 이어지도록 지원해 고향사랑 실천의 저변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천향우회 회원들은 고향에 방문하면 ‘고향희망채움공간’에 들른다. 이 공간은 오래돼 낙후됐던 군민실내체육관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지난 9월 군민체육대회 참석차 고향을 찾은 출향민들은 지역주민과 함께 이곳에서 지역 현안에 대해 논의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행안부는 이처럼 지자체와 함께 유휴시설을 리모델링해 출향민과 지역 주민이 교류하는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진행했다. 합천을 포함해 전국 10개 지자체에서 공간을 조성 중이다.
재경양양군민회 역시 주기적으로 고향을 찾아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9월 출향민들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에 위치한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을 견학하고 인근 전통시장을 찾아 송이버섯 등 지역 특산물을 구매해 지역경제에 작은 힘을 보탰다. 명창환 행정안전부 지역공동체과장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지자체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고향희망심기사업이 지역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향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보탬이 되고 싶어 자발적으로 나서는 출향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지역 장학사업에 나서거나 기부를 하고 싶어도 사단법인을 만들어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기부금법에는 지자체가 기부금을 직접 모집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안부는 ‘고향사랑 기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자체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세액공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지자체는 이 금액을 주민복리 증진이나 지역공동체 활성화 등에만 사용하게 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고향기부가 더 활발해지고 악화된 지방재정을 보완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고향 땅 밟고 특산물 사고… 활력 되찾은 지역경제
입력 2018-11-19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