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성명서 ‘불공정한 무역관행’ 문구 빼라”… 中 대표단, 파푸아 장관실 난입 시도

입력 2018-11-19 18:42 수정 2018-11-19 21:38
17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르즈비에서 열린 APEC 최고경영자(CEO) 포럼 기조연설에 앞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중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동성명 문건에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란 문구가 포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외교적 무례를 범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중국 대표단은 지난 17일 APEC 의장국인 파푸아뉴기니의 외무장관 집무실에 난입하는 소동을 벌였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19일 보도했다.

중국은 당초 공동성명 초안에 들어있는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관행 등을 포함한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절취 행위와 외국기업 기술이전 요구, 국영기업 보조금 지급 등을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 지목하고 시정을 요구해 왔다. 따라서 중국은 이 문구에서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란 표현이 명백히 자국을 지목한 것이라며 해당 문구를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20개 참가국은 그 문구를 그대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PEC 공동성명 문구 조정이 난항을 겪자 중국 대표단 4명은 림빈크 파토 파푸아뉴기니 외무장관 집무실에 진입하려다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다. 이들은 파토 장관과의 면담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압력을 가하려 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사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양국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이들이 악의적으로 퍼뜨린 소문”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란 문구 때문에 공동성명 채택은 무산됐다.

WSJ는 이번 사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의 최대 역점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성과에 대해 조바심을 내는 중국 정부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료들은 일대일로가 곳곳에서 삐걱거리며 좌초 위기를 겪자 좋은 결과를 베이징에 보고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파푸아뉴기니에도 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대출과 투자를 하며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은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 파푸아뉴기니 인구의 70%에 전기를 공급하는 프로젝트에 합의하는 등 서방의 대중국 견제를 강화했다.

중국은 공동성명 채택 무산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발언이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평화로웠던 회의 분위기를 망쳤다”며 “참가국들이 공동인식에 다다르지 못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겅 대변인은 중국이 공동성명 초안을 거부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미국 주장 때문만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