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관 대표들의 탄핵 요구,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입력 2018-11-20 04:01
전국법관대표회의가 19일 이른바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 있는 법관들에 대해 탄핵소추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의혹이 탄핵소추를 해야 할 만큼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법원 조직이 내부 공식 회의에서 탄핵 결의를 한 것은 사법부 사상 유례가 없다. 물론 사법농단 의혹이 아직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논의가 부적절하다는 일부 법관들의 의견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된 것은 그만큼 법관 대다수가 현재 사법부 상황을 엄중한 위기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구성원 스스로가 헌법 위반 행위로 손가락질 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의혹 자체가 사법부로서는 치욕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법관들의 탄핵 입장 표명으로 사법부 내에는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법원장 자문기구이고, 이들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다. 그러나 회의에 앞서 대표들은 일선 법관들의 의견을 두루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법원 내 다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법관들의 입장은 사실상 국회가 탄핵소추 절차를 밟으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지금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상당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60% 이상이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구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재 법원이 과연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이날도 전직 대법관이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고, 다른 전직 대법관들도 조사받을 예정이다. 게다가 검찰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공소장에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현직 법관 93명의 이름이 적시됐다. 사법부의 참담한 현실이다.

재판 독립 침해 등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법관들의 결의는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사태가 진보와 보수 세력의 대립 구도로 간다 할지라도 정리하고 평가해야 할 것들은 분명히 정리·평가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를 정치적 시빗거리로 만들어 대립 구도로, 혹은 또 하나의 적폐청산 방식의 수사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게 더 정치적이고 정략적 의도가 밴 것이다.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대강 무마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더 큰 악성종양으로 재발할 것이다. 정치인들, 특히 지도자들은 개인의 영달이나 입지 강화를 위해 이번 사태를 정치적 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사태의 근인은 정치권력이 국민 뜻을 배반하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시킬 수 있는 헌법 유린 행위를 요구했고 일부 법관들이 부응했다는 것이다. 법관 개개인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했는지 성찰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