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셜록’이 된 피해자들… 250억대 P2P 대출 사기피의자 잡았다

입력 2018-11-18 22:06 수정 2018-11-21 17:32

누적 대출액이 400억원에 이르는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 업체 대표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차주)과 공모해 250억원 규모의 허위 대출 상품을 내놓고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다. P2P 대출은 최근 연체율이 급등하는 등 피해가 늘고 있지만 관련 법안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투자자들이 직접 발로 뛰어 대표의 사기 혐의를 입증해야 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P2P업체 P사 대표 A씨(49)를 지난 14일 구속했다고 18일 밝혔다. P2P 대출은 돈이 필요한 차주가 온라인 홈페이지에 대출 액수나 사용처를 올리면 불특정 다수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융 서비스다. P2P 업체들은 차주와 투자자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A씨는 자신의 친동생(47), 차주 B씨(44)와 짜고 거짓 투자 상품을 투자자에게 중개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2016년과 지난해 돈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이 없는 B씨를 차주로 내세워 투자금 252억원을 가로챘다고 보고 있다. 해당 상품들에 투자를 했다가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1700여명에 이른다.

피해자 모임 30여명은 지난 1월 A씨 등이 허위 투자 상품을 내세워 투자금을 빼돌렸다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피해자 모임 부대표 C씨(46)는 “지난해 중순 이후 모든 상품들이 동시적으로 연체되기 시작, 연체규모가 200억원에 육박했다. 모두 같은 차주에게 돈을 빌려준 거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P2P 대출 업체를 규제하는 법이 없는 탓에 P사는 차주의 정보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정황만 제시돼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결국 스스로 변호인단을 선임한 후 사기 증거를 찾아 지난 4월 재고소했다. 직접 토지 등기부등본과 차주의 사업자 등록번호를 추적했다. 그 결과 건물 공사비를 투자 받겠다는 차주가 사실은 건물이 세워질 땅조차 구매하지 않았는데도 A씨가 펀딩을 진행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A씨가 B씨에게 ‘당신이 대출 자격이 되지 않는 걸 알지만 어차피 상품을 내놓으면 펀딩은 된다’고 말한 녹취록을 구해 경찰에 제출했다. 자격이 없는 차주가 NPL(금융회사의 부실채권·대부업체 등 특정 업체만 구매 가능)을 사겠다고 대출을 신청했는데 이를 허용한 증거도 찾았다. 피해자들이 직접 발로 뛰고 나서야 수사는 10개월여 만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경찰은 A씨 형제와 B씨 등 3명을 이주 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피해자들은 관련법 정비를 촉구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P2P 업체를 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어 연계 대부업체를 통한 간접적인 관리만 가능하다. 피해자 모임 대표 김모(47)씨는 “금감원에 여러 번 진정서를 넣었지만 ‘우리는 감독 권한이 없으니 형사·민사 소송을 진행하라’는 답변만 얻었다”며 “생계 직업이 있는 일반인들이 매월 정기 모임을 가지며 사기 혐의자들을 추적하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은 5개나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피해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업계 3위 루프펀딩의 대표는 차주와 짜고 투자금 약 80억원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 혐의로 구속됐고 누적대출액 규모가 1300억원에 달했던 아나리츠도 대표도 허위로 부동산 상품을 만든 혐의로 구속됐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