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면서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하면 달라지고 변화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기 전보다는 밝고 웃는 인상으로 달라집니다.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즐겁고 기쁨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웃게 되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인상이 달라집니다. 웃음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웃음은 귀합니다. 사람이 늙어가며 죽음이 가까울수록 변화되는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숨 쉬는 일입니다. 어린아이가 숨 쉬는 것을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은 배가 볼록볼록하도록 숨을 쉽니다. 그러다가 점점 나이 들면서 숨이 위로 올라오는데, 가슴으로 쉬고 목으로 쉬다가 더 이상 올라갈 때가 없어서 숨이 빠져나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린아이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얼마나 잘 웃습니까.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웃음이 사라지고 죽을 때는 웃지 않고 죽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웃음이 끊어져서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웃음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고 합니다.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 표정은 날마다 히죽히죽 웃습니다. 그런데 미친 사람들은 미친 것 외에는 다른 병을 앓지 않는다고 합니다. 웃음이 귀하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웃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유머가 있는 사람이 인기 있습니다.
둘째, 웃는 것은 어렵습니다. 웃음은 귀한 것이며 웃으면 그만큼 내게 유익이 되는데 웃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혹시 사람들을 웃겨보셨습니까. 웃겨보니까 잘 웃던가요. 경험해 봤겠지만 누군가를 웃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남을 웃기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웃기는 것도 재주라 할 수 있고, 능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을 울리는 일은 쉽지만 웃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웃게 하십니다. 본문 성경의 내용에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웃음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사라라기보다는 사라의 가정에 웃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사라와 그의 가정에는 웃음이 없었습니다.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 아브람의 나이가 100세에 가까워지고 사라 본인도 90세에 가까워가고 있었습니다. 자녀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웃을 일이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라와 그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본문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주셨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나처럼 웃게 될 것이다.” 사라가 아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아들이 없어서 웃음이 없던 가정에 하나님께서 웃을 일이 생기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웃음을 주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웃음은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웃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면 굳이 하나님께서 웃음을 주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웃도록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웃음을 주셔서 웃음꽃이 가득한 가정이 되게 하십니다.
100세 되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비록 아브라함이 늙었다 할지라도 아들을 주셔서 웃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성경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느 누가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나는 지금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하나님께서 웃게 하신 것입니다. 웃으며 사는 것은 교회 다니며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받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인치승 서울 아름다운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웃게 하시는 하나님
입력 2018-11-20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