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쪽이 넘는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행정처장(대법관)이 ‘사법농단 의혹’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소장엔 이인복 전 대법관, 현직 대법관인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의혹 연루 정황도 담겼다.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6년 9월 대법원장실에서 임 전 차장에게 “대법원장 임기 내에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이 사건 처리와 관련해 청와대·외교부와 논의한 결과를 보고한 직후였다. 당시 청와대는 대법원 측에 강제징용 사건 선고를 최대한 지연시키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는 대법원에 청와대 측과 비슷한 취지의 의견서를 전달하기로 했다.
임 전 차장은 직후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이 같은 양 전 대법원장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외교부가 의견서를 늦어도 11월 초까지 보내주면 가급적 이를 기초로 최대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약속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또 차한성·박병대 전 처장이 2013년과 2014년 참석한 ‘김기춘 비서실장 공관회의’ 결과도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차 전 처장은 당시 회의에 참석해 사건과 관련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우려를 전해 듣고 “왜 이런 이야기를 2012년 대법원 판결 때 안 했느냐. 브레이크를 걸어 줬어야지”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한다. 차 전 처장은 “운이 좋으면 1년 이상 지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당시 전원합의체 회부 안건을 결정하는 ‘전합소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 측 요청에 따라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계획을 실제 이행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이인복 전 대법관, 권순일 선관위원장이 임 전 차장의 범죄 행위에 연루됐다는 정황도 추가로 공개됐다. 이 전 대법관은 선관위원장이던 2014년 12월 행정처 관계자로부터 ‘통진당 예금계좌에 대한 채권가압류 신청사건에 대한 검토’ 문건을 넘겨받고 이를 선관위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에는 “통진당 잔여 재산은 가압류가 아니라 가처분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문건을 건네받은 선관위는 통진당 예금채권에 대해 일괄적으로 가처분을 신청했다. 권 위원장은 그가 행정처 차장이었던 2013년 임 전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청와대 요청이 담긴 문건 다수를 보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임 전 차장의 재판 개입 정황도 새로 드러났다. 임 전 차장은 2015년 8월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피고인 민사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에게 ‘홍 의원 사건을 잘 살펴봐 달라’고 직접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장은 주심판사에게 이 요구를 그대로 전달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행위가 명백한 ‘재판 개입’이라고 본다. 이 내용은 당초 구속영장 범죄사실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재판 개입이 홍 의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홍 의원은 그해 3월 임 전 차장에게 해당 소송 정보를 요구했고, 임 전 차장은 3월과 5월 두 차례 민사소송의 승소 가능성과 진행 경과 등이 담긴 보고서를 홍 의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문동성 이가현 기자
檢, 전직 대법관들 ‘재판거래 공모’ 강조
입력 2018-11-14 22:11 수정 2018-11-15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