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환위기 때로 돌아간 고용 상황… 지금이 위기다

입력 2018-11-15 04:01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4일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우리 경제에 대한 근거 없는 위기론은 국민들의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14일 나온 ‘10월 고용동향’은 장 전 실장의 인식이 얼마나 ‘근거 없는지’ 보여준다. 10월 기준 실업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고 실업률도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최악이었다. 실질적인 고용창출 능력을 보여준다며 청와대가 가장 강조한 고용지표인 고용률은 61.2%였다. 전년대비 0.2% 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지난 2월 이후 9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27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이후 최장기간이다.

산업별로 보면 세금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만든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등의 일자리 덕분에 취업자 증가폭이 그나마 마이너스를 면했다고 볼 수 있다. 고용의 양과 질 모두가 멀리는 외환위기, 가깝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다.

고용 부진이 일시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건 생산과 투자 등 경제동력까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지표 악화가 설비투자와 제조업 생산능력지수 감소, 제조업 공장가동률 하락 등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6% 포인트나 낮은 2.3%로 내렸다. 무디스는 한국 정부의 정책 실패가 성장률 하향의 주요 원인임을 분명히 했다. 무디스의 한국 담당 이사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 한국 내부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통화긴축 등 외부의 부정적 효과를 더욱 강화시켰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새 경제팀은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경제위기라는 말은 애써 피한다. 홍 후보자는 위기가 아니라 일부 부진이라고 했다.

물론 위기의식이 위기를 불러온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경계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새 경제팀의 발언을 보면 기업 현장이나 민간 전문가들이 갖는 위기감이나 다급함과 큰 거리가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여기다 민주노총 등 일부 노동계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하는 것 같은 ‘최소한의 수정’에도 집단의 힘을 믿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고용 통계를 비롯해 최근 경제지표가 보내는 신호는 한국 경제가 자칫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말대로 지금 ‘위기냐 아니냐’는 논쟁은 한가한 소리다. 위기가 앞으로 닥칠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됐다고 보고 대응해야 한다.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우선 노동계의 이기적 집단행동에 대해 말로만 비난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선을 긋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