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유달리 파랗고 높은 하늘과 단풍, 그리고 계절을 잊은 듯 피어난 꽃들로 인해 올 가을을 아름답게 보내고 있다. 알록달록 물든 단풍이 떨어지고, 반짝이는 전구열매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특히 추수감사절과 더불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내 안에 폭풍이 있었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가끔 십자가를 지게 해 주셨기에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나를 미워한 사람에게도 감사한 것은 나를 더 돌아보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것임도 깨달았습니다. 때때로 가시 같은 아픔으로 저의 잠든 영혼을 깨워주심에 감사하고,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우게 해주심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게 하소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승리한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참 감사를 발견한 이들이다. 폐결핵 환자였던 모차르트, 시각과 청각 장애자였던 헬렌 켈러,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녔던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루스벨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형들에게 미움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평생 감사로 역경을 극복하면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감사절 11월에 가장 많이 불리는 찬송가 ‘저 밭에 농부 나가’(591장)는 특이하게 독일사람 클라우디우스(1740∼1815)가 1782년에 작사한 곡이다. 1760년경 그의 동생이 폐병으로 죽은 후 자신도 폐출혈 병으로 앓기 시작했다. 목회자 아들이었던 클라우디우스는 예나(Jena)대학교에 다니면서 자유 신앙가들의 영향을 받아 교회에서 멀어지고 인본주의 삶을 살게 됐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잘못 됐는가를 깨달았다. 하나님의 기적을 부인했던 자신이 기적을 구하면서 죄인임을 깨닫고 기도를 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임했고, 서서히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클라우디우스는 후에 독일의 북쪽지역 헷세담슈타트 지역의 농사를 총책임지고 관할했던 농산부 농정국장의 일자리를 사임한 뒤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그는 직업을 통해 느끼고 체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찬송시 ‘밭을 갈다(Wir Pflugen)’를 썼다. 이를 요한 슐츠(1747∼1800)가 1800년에 작곡했고 제인 캠벨(1817∼1878)이 1861년 영어로 번역했다.
찬송에서도 표현했듯, 하나님은 이 세상을 풍족하게 꾸미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놓으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섬세한 변화를 주셔서 돌보시기까지, 우리에게 무한한 감사를 받으시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요즘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해와 편리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버려지는 쓰레기들로 인해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이제라도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크리스천부터 쓰레기를 줄이려는 작은 실천을 생활화 하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에도 감사하는 것처럼,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감사의 제목들이 생겨나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감사노트를 만들어 매일 감사한 일 5가지를 쓰고 있다. 처음엔 5가지를 채우는 것이 힘들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5가지가 10가지가 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면서 가족들 모두 함께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감사는 분명히 삶의 유익과 은혜를 베푸신 그 많은 사랑에 대한 작은 예물이다.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세상의 소유물에 집착하지 말고 믿음의 크기를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 감사로 넘쳐날 것이다. 주님의 감사와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백석예술대 교수·성악가>
[김진상의 찬송가 여행] 감사는 ‘소유’ 아닌 ‘믿음’ 크기에 비례한다
입력 2018-11-16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