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캠페인] 태권도·코딩·영어수업 들은 아이들 눈망울엔 희망이 ‘초롱’

입력 2018-11-14 00:03
민주식 선교사, 여찬근 목사, 박재범 부문장(가운데 왼쪽부터) 등이 지난 2일 오후 멕시코 칸쿤 쿠나마야의 한 축구장에서 열린 '호프컵 기념 마을잔치'가 끝난 뒤 지역 아이들과 손을 흔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쿠나마야 아동개발센터에서 현지 아이들이 태권도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월 한국에서 열린 ‘2018 기아대책 호프컵’에 참가한 학생들이 ‘호프컵 기념 마을잔치’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공연하고 있다.
멕시코 동쪽 킨타나로오주의 칸쿤 국제공항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쿠나마야 지역. 공항 근처에 10㎞ 이상 즐비해 있는 화려한 호텔촌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변변한 건물 하나도 보기 힘든 빈민가였다. 이곳에서 하얀색과 하늘색으로 꾸며진 3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라 에드카시온 캄비아 누에스트라 비다’ 건물 3층에 새겨진 이 에스파냐어 문구는 이곳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교육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뜻이다.

여찬근 남서울중앙교회 목사는 지난 1일 오후 박재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서울네트워크부문 총괄부문장, 서윤심 기아대책 간사와 이곳을 찾았다. 2010년 기아대책에서 ‘기대봉사단’(전문인 선교사)으로 파송된 민주식(63) 선교사가 지역 아이들을 위해 교육을 접촉점으로 복음을 전하는 아동개발센터다. 민 선교사는 지역 아이들에게 ‘엄마’로 불린다. 센터는 지역에서 부모 대신 아이들을 돌보며 이들의 공부를 지도해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칸쿤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마약 전쟁으로 많은 젊은이가 희생됐다. 마약범죄조직 ‘카르텔’들의 영역 다툼이 있는 칸쿤의 많은 청소년은 마약 매매 등에 이용당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 지역 아이들 240여 명이 꿈을 키우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센터 1층에 있는 50평(165.3㎡)의 농구실에선 태권도 수업이 한창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단복을 입은 센터 스태프 아난 카말(21) 씨의 지도하에 11명의 아이가 한국어로 기합을 넣으며 발차기와 방어 기술 등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발을 뻗었다. 집중력 있는 태도였다.

태권도 1단인 카말씨는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면서 점점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산만했던 아이들의 집중력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루시아 투요(12) 양은 “태권도 배우는 것을 학교 친구들이 알고 부러워한다”며 수줍게 말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로드리거 다마이팟(12) 군은 “태권도를 배우는 게 재밌다. 나쁜 사람들로부터 나를 방어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1시간 동안 태권도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컴퓨터 코딩, 영어회화 수업에도 참여했다.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아이들도 장소를 바꿔가며 이들 3개 수업을 들었다.

2004년부터 멕시코에서 정규유치원 사역을 한 민 선교사는 교육을 통해 복음을 직접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지역을 택했다. 기아대책의 아동개발사업이 적합하다고 봤다. 현지인이 말릴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으나 기도 응답을 받았기에 오히려 마음이 평안하다고 했다. 민 선교사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봤기에 이곳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확신했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시급했다.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민 선교사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이 사역을 소개했고 센터 설립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했다. 이후 기아대책과 교회 등에서 후원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

센터는 지역의 ‘방과후교실’ 이상을 넘어 지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방과후교실에서는 학업성취에 도움이 되는 태권도와 코딩, 영어, 미술 등의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토요일에는 반별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가르친다. 훈련받은 현지 스태프 5명이 헌신하고 있다. 학부모교실과 마을청소, 가로등 설치 및 보수 등 지역개발 사역도 병행한다.

디아나 짚(16) 양은 “센터에서 교육을 받다가 하나님을 알게 됐다. 가족을 전도해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다. 민 선교사님처럼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민들은 아동개발사업을 통해 아이들이 꿈을 갖고 바르게 성장한다며 민 선교사에게 감사해했다. 지역 이장인 사비노 갈마치(42) 씨는 “선교사님이 우리 지역에 오시고 어두웠던 지역이 밝아졌다. 내 가족만 생각한 지역민들이 화합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이 선교사가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자 갈미치씨는 “우리 가족”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여 목사는 ‘교사 및 학부모 리더’ 특강에서 “70여 년 전 전쟁을 치른 한국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신앙 안에서 소망을 가졌고 하나님의 은혜로 발전했다”며 “하나님은 우리가 환경에 굴복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격려했다.

▒ “축구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꿈 심어줘”… 주민 300여명 흥겨운 시간

‘호프컵’ 참가 기념 마을 잔치


지난 2일 오후 멕시코 칸쿤 쿠나마야 지역의 한 축구장. 아동개발센터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 ‘호프컵(Hope Cup) 기념 마을잔치’가 열렸다. 아이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풍선 터뜨리기와 탁구공 맞추기, 간이 축구 등의 게임을 했다.

사릿 라모스(10) 양은 “아동개발센터에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종종 마련해준다. 부모님과 즐겁게 지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마을잔치에는 지역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마을잔치는 지난 9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이 주최한 ‘2018 기아대책 호프컵’에 아동개발센터 학생들이 참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호프컵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축구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행사다. 호프컵에 참여한 학생 12명의 사진이 축구장 가운데에 걸려 있었다.

닐리 시아우(18) 양은 “한국에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 승무원이라는 꿈을 다시 찾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민주식 선교사와 10년 이상 교제한 올리바 메디나(45·여) 전 사회복지기관장은 “지역에서 책임감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교가 거의 없다. 민 선교사는 사랑을 못 받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채워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여찬근 남서울중앙교회 목사는 “우리 성도들이 지역과 아이를 회복시키는 아동개발사업에 함께 참여한다면 이 지역뿐 아니라 교회와 가정, 일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이 사역에 동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 선교사는 “칸쿤 등 멕시코의 여러 도시들이 마약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평화 캠페인’을 통해 우리 마을을 살기 좋고 안전한 마을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마을잔치가 끝난 뒤 지역민들은 “파스 데 디오스 파라메히코(하나님의 평화가 멕시코에)”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했다.

칸쿤(멕시코)=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