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동영상처럼 폭행 당했다”

입력 2018-11-13 18:58 수정 2018-11-13 21:57
폭행과 강요 혐의 등으로 체포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7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3년 H마트 쇼핑몰에서 2년6개월간 8770시간을 근무한 양도수씨는 과로에 의한 면역력 저하로 우측 폐 절반을 잘라냈다. 양씨는 “양진호 동영상처럼 수십 명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사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행 영상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사는 가운데 정보기술(IT) 업계에 만연한 직장 내 ‘갑질’과 폭행에 대한 피해자들의 증언들이 터져 나왔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3일 국회에서 주최한 ‘양진호 회장 폭행 사태로 본 IT 노동자 직장 갑질·폭행 피해 사례 보고’ 토론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은 각기 경험한 갑질 피해 사례를 쏟아냈다.

온라인 교육업체에서 직장 괴롭힘을 당하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자의 유가족도 토론회에 참석했다. 고(故) 장민순씨의 언니 향미씨는 “IT 스타트업의 성공신화와 화려한 성장 뒤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며 “과로와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생은 크게 좌절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갔다.

향미씨에 따르면 동생의 직장 상사는 매일 동생이 퇴근하기 전 반성문 형태의 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했고, 심지어 동생이 채식주의자였음에도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본인을 ‘25살의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김현우씨는 “대표가 셔츠 색상을 잘못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한 직원을 골프채로 때렸고, 다른 팀원은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다른 동료로 하여금 뺨을 수차례 주먹으로 때리도록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학업을 병행하던 김씨는 회사 대표로부터 ‘학교고 학점이고 지랄할 때가 아니지’라는 폭언을 듣는 등 학업 포기를 강요당했다.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 부문 점유율 1위인 외국계 IT 회사의 한국지사에서 벌어진 사례도 폭로됐다. 안종철 한국오라클 노조위원장은 “일상화된 해고 압박과 욕설 회의, 조직적인 불법 매출 강요에 시달렸다”며 “세계적인 IT 회사가 불합리한 일을 한국에서만 지속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나라 IT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직장에서 지위를 이용한 갑질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지난 9월 통과시켰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일부 야당 의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