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난방용품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64)씨는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김씨 공장은 난방용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1년 중 하반기에 주문이 몰린다. 직원 60명인 이 공장의 경우 내후년부터 주52시간 근로제 적용을 받는다. 한창 주문이 몰리는 시기에는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씨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기대한다. 단위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나면 직원들에게 하반기 중 최소 3개월은 주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반면 직원들 마음은 착잡하다. 단기간에 근무시간이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물론 연장근로수당이 사라져 월급봉투가 얇아지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보완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사실상 ‘합의’를 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탄력근로제는 주52시간(월∼일요일 주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없는 근로시간 단축에 예외를 두는 제도다. 연장근로 12시간을 제외한 ‘주40시간’이라는 원칙을 일정 기간(단위 기간)에 평균으로만 맞추도록 한다. 예를 들어 업무량이 많은 주에 52시간을 일하고, 업무량이 적은 주에는 28시간만 일을 해 주당 평균 40시간을 채우는 것이다.
탄력근로제를 둘러싼 논란의 뿌리는 ‘전(錢·돈)의 전쟁’에 닿아 있다.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는 단위 기간은 물론 제도 자체를 두고 대립한다. 정부와 여야는 평균을 내는 기간을 현재 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늘리려고 한다.
탄력근로제의 장점은 합리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냉난방용품 공장처럼 계절에 따라 업무량이 달라지는 업체는 일이 많을 때 초과 근무를 하고, 일이 적을 때 평소보다 적게 일을 하면 된다. 회사가 취업 규칙을 변경하면 2주 이내, 노동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면 3개월 이내에서 주당 평균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제외)을 맞출 수 있다. 다만 단위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게 재계의 불만이다. 탄력근로제 도입률이 3%에 불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거부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정의당을 중심으로 반대가 거세다. 노동계가 우려하는 지점은 임금 삭감과 장시간 근무다.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면 단기적으로 연장근로 12시간을 제외한 ‘주40시간’이라는 법정 근로시간 규칙을 최대 52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연장근로까지 합하면 주당 64시간(주52시간+연장근무 12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돈의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이 노동자에게 연장근로를 시키려면 평소보다 1.5배 많은 수당(연장근로수당)을 줘야 한다. 하지만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연장근로수당 없이도 주52시간까지 일을 하게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부담도 토로한다. 현재 탄력근로제는 주40시간이라는 평균을 맞춰도 한 주의 근무시간을 48시간(단위 기간 2주일 때) 또는 52시간(단위 기간 3개월일 때)을 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둔다. 상한선이 있어도 연장근로 12시간까지 합치면 1년 중 몇 개월은 주 64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이에 따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논의할 때 보완책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기형적 임금 체계, 장시간 노동이라는 두 가지 고질병을 앓고 있다. 기업들은 연차에 따라 계속 올려줘야 하는 기본급(본봉) 대신 각종 수당을 책정해 임금 총액은 늘리고 기본급을 적게 주는 임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은 적은 기본급으로 장시간 일을 시킬 방법을 찾고, 노동자는 임금 삭감을 피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 보전책과 장시간 노동을 막을 ‘상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탄력근로제 논쟁은 ‘누더기 임금 체계’에 대한 논란으로 연결될 것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삭감 문제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
논란 많은 탄력근로제, 결국 연장근로수당 둘러싼 노사 간 ‘錢의 전쟁’
입력 2018-11-1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