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채용공고에 속 타는 취준생, 기업은 “내부정보” 난색

입력 2018-11-13 04:00
대기업에 다니는 5년차 직장인 이모(32)씨는 지난달 얼굴 한번 못 본 대학 후배들로부터 연락을 여러 차례 받았다. 후배들은 주로 이씨가 재직 중인 기업의 초임 연봉과 채용 인원 등을 물었다. 기업들이 구직자들에게 필수적인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 관행 때문이다.

실제로 구인·구직 중개업체 ‘사람인’이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기업 429개를 대상으로 ‘채용공고 비공개 관행’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2.9%가 ‘아직 부분적으로 채용 정보 비공개 관행이 남아 있다’고 응답했다.

공개하지 않는 정보는 ‘연봉’(57.1%, 복수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채용 인원’도 22.8%나 됐다. 취준생(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명 채용’이 10명을 뽑겠다는 것인지 99명을 채용하겠다는 뜻인지 알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씨는 “입사를 희망하는 기업에 가족이나 선배 또는 지인이 다니고 있지 않는다면 (채용공고만으로) 연봉과 채용 인원 등을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기업들이 비공개 관행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기업의 61.2%(복수응답)가 ‘기업 내부 정보라서’ 연봉을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채용 규모를 상세히 적지 않는 이유로는 ‘유동적인 채용 업무 처리를 위해’(58.9%, 복수응답)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최한솔 노무사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인 임금을 적시하지 않는 기업들의 행태는 분명 잘못된 일”이라며 “채용 인원을 명시하지 않고 지원자 중 아무도 뽑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들은 채용공고에 자세한 정보를 적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한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12일 “연봉을 게재하면 그게 입사의 절대적 기준이 돼 우수한 직원을 뽑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도 “취준생이 직무와 적성은 고려하지 않고 연봉을 최우선으로 고려할까봐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봉을 공개할 경우 기업 간 서열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으로는 기업이 취준생에게 연봉과 채용 인원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할 의무는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2016년 12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재발의했다. 법률안은 채용 대상 업무, 임금, 채용 예상 인원 등을 채용공고에 명시토록 하며, 채용 여부를 고지할 때 채용 단계별 불합격 사유도 함께 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2년이 다 되도록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